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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하철 참사 부상자들, 일회성 보상으로 어려움 겪어

입력
2014.06.10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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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구지하철 참사가 발생한 중앙로역에서 지난 5월 8일 이동우 대구지하철참사부상자가족대책위원회 위원장이 검게 그을린 물품보관함을 바라보고 있다. 보관함에는 희생자 지인, 시민들의 위로 메시지가 적혀 있다. 변태섭기자
192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구지하철 참사가 발생한 중앙로역에서 지난 5월 8일 이동우 대구지하철참사부상자가족대책위원회 위원장이 검게 그을린 물품보관함을 바라보고 있다. 보관함에는 희생자 지인, 시민들의 위로 메시지가 적혀 있다. 변태섭기자

대구지하철 참사가 발생한 2003년 2월18일 오전. 고교 졸업 후 아르바이트를 하던 김지호(당시 20세ㆍ가명)씨는 돈을 받으러 가기 위해 지하철(1080호)을 탔다가 간신히 목숨은 건졌지만 유독가스를 마셔 폐와 기도가 손상됐다. 2개월간 호흡기 치료를 받은 김씨는 이후 1년6개월 동안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했다. 사고 후유증으로 불면증에 시달려 자해까지 했기 때문이다.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한 뒤에도 김씨는 정상적인 직장 생활을 하지 못했다. 손재주가 좋아 헤어디자이너 자격증을 따고 미용실에 취직했지만 3개월 이상 버틴 적이 없었다. 불면증 때문에 일하다가 졸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김씨의 어머니 최수영(53ㆍ가명)씨는 “취직을 해서 한시름 놓았다 싶었는데 ‘애가 창고에서 자고 있으니 데려가라’는 전화를 받은 적도 있다”며 고개를 저었다.

11년이 지났지만 김씨는 아직도 참사의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불면증 증세는 여전하고 캄캄한 곳에 대한 공포를 극복하지 못해 지금도 밤에는 전등을 켜놓는다. 어머니 최씨는 “집으로 오는 골목이 컴컴한 편이어서, 늦은 시간에는 아예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도 많다”고 한숨을 쉬었다.

김씨의 가족은 여전히 참사의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정부 지원은 참사 당시 보상금과 2006년 정부가 조성한 만성후유기금이 전부다. 다만 대구지하철참사 부상자가족대책위원회의 오랜 요구 끝에 지난해 10월 시 예산으로 종합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시 예산으로 건강검진을 받은 것은 참사 후 처음이다.

이동우(70) 대책위 위원장은 “부상자들은 참사 후 일시적인 지원을 받았지만 생계가 어려워 건강이 나빠져도 병원 한 번 제대로 가지 못한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실제로 부상자들의 건강 상태는 계속 악화되고 있다. 지난해 대구시 예산으로 94명의 부상자들이 건강검진을 받은 결과 2차 진료가 필요한 대상자가 25명이었다. 부상자 대책위는 정부 지원이 어렵다면 국민성금의 일부를 치료비로 쓸 수 있길 원하지만 유가족 단체들과 대구시는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대구지하철참사 부상자는 현재 146명(5명은 사망)이며, 가족들까지 합하면 700여명이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 부상자 단체의 주장이다. 이 위원장은 “부상자와 가족들에게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가 언제 나타날지 모른다”며 “희생자 가족 뿐 아니라 부상자들에 대해서도 정부와 시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구=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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