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근 역으로 연결된 철제계단 통로
폭 60cm도 안돼 이동 쉽지 않아
민간 위탁 운영하는 역이 27% 차지
최저임금 수준 급료 받는 비정규직
감시·화재 진압 업무 맡아 '한계'
최악의 지하철 사고였던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대구도시철도공사는 마치 강박증에 걸린 것처럼 재해예방에 집중 투자했다. 이들은 “참사 이후 직원들은 불이 연상되는 빨간 옷도 입지 않을 정도로 화재에 민감하게 반응ㆍ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재난은 방심하는 순간 다시 찾아온다. 이달 2일 대구 지역 시민단체인 안전생활실천연합(안실련) 김중진(56) 사무총장, 차상은(55) 안실련 시민안전연구소장과 함께 대구 지하철역들의 방재상태를 점검했다.
좁은 비상계단, 변전실 등 방재 취약
하루 1만명의 승객이 이용하는 대구지하철 1호선 성당못역의 도심 방향 승강장 맨 앞쪽 벽에는 ‘출입금지, 터널대피로’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지하철에서 화재가 발생할 경우 선로로 내려가 터널을 통해 인근 역으로 대피할 수 있도록 만든 철제계단 통로다. 그러나 계단의 폭은 50~60㎝ 정도로 성인 남성 1명이 이동하기조차 쉽지 않다. 차상은 소장은 “열차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700명 넘는 승객이 승강장으로 쏟아져 나올 텐데 계단이 장애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도시철도건설규칙 72조는 승강장에서 터널로 통하는 진입로의 너비를 ‘90㎝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구지하철 참사 당시에도 선로로 대피하지 못하고 역사(驛舍)를 통해 빠져나오다 숨진 이들이 111명에 달해 전체 사망자의 절반을 넘었다.
화재로 인한 정전 시 승객들이 대피로를 쉽게 찾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하루 3만 명이 넘는 승객이 이용하는 1,2호선 환승역 반월당역의 1호선 승강장 야광타일은 빛이 바랬다. 2호선 승강장과 환승통로에는 아예 야광타일이 보이지 않았다. 야광타일은 역내 전등이 꺼졌을 때 4시간 동안 빛을 내 승객들을 외부로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탈출 통로를 안내하는 유도등이 있긴 하지만 승강장에 불이 나면 천정 부분은 연기로 뒤덮여 낮은 자세로 대피해야 하는 승객들은 야광타일에 의존해야 한다.
지난달 안실련이 대구지하철 차량과 10개 역사를 분석한 ‘안전관리실태 특별점검 보고서’에서도 여러 문제점들이 지적됐다. 특히 화재 감지기의 오작동이 문제였다. 지난해 대구지하철의 화재감지기 오작동 발생률은 2.05%로 대기업들이 자체적으로 방재담당자들에게 요구하는 수준(0.1%)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2003년 참사 당시에도 화재감지기가 울렸으나 사령실의 근무자들은 평소 오작동이 많았다는 이유로 이를 무시했다가 참사를 키웠다.
변전실이나 통신실 등도 취약했다. 전기설비가 많은 특성상 불이 나면 물 대신 이산화탄소를 분사해 진화하는데, 분출 압력을 일정하게 유지해주는 과압(過壓) 배출기가 설치돼 있지 않아 화재진압에 실패하거나, 가스누출로 인한 2차 인명피해가 우려된다고 지적됐다.
홍원화 경북대 건축토목공학부 교수는 “안전 점수는 100점 아니면 0점으로 중간 점수는 의미가 없는 만큼 긴장을 늦춰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27%가 위탁역…위기 대처가능할까
경영합리화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대구지하철의 민간위탁 운영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시설이나 설비, 시스템 개선도 중요하지만 이를 운용하는 것은 사람이다. 경미한 열차 화재로 그칠 수 있었던 사고도 기관사와 사령실간의 소통미흡, 기관사ㆍ역무원들의 상황 대처 능력 부재 때문에 참사로 이어졌다. 2005년 8개 역을 위탁 운영하기 시작한 대구지하철은 현재 16개역(27%)을 위탁역사로 운영하고 있다. 평균 10명의 비정규직 직원이 열차운행 모니터링, 승강장 감시, 화재진압 등 주요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들 비정규직 직원들의 임금(시급 5,230원)은 최저임금(5,210원) 수준이다.
위탁 역의 직원들도 소방체험교육, 승객대피교육, 모의소방훈련 등을 정규직과 동일하게 받지만 세월호 참사때 선장 등 비정규직 선원들이 배를 버리고 먼저 탈출했던 사례처럼 위기상황에서 이들에게 책임있는 현장 통제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대구지하철의 한 위탁 역에서 2년6개월째 일하고 있는 김모(49)씨는 “이 역에 온 뒤 직원 9명 중 5명이 바뀌었을 정도로 이직률이 높다”며 “정규직과 똑같이 훈련과 교육을 받지만 시간 때우기식으로 훈련에 임해 실제 위기상황에 대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공사는 위탁역 운영으로 연간 36억~38억원 정도의 비용절감 효과가 있다고 추산하고 있다. 이성일 대구지하철노조 총무국장은 “사고가 발생할 경우 감당할 사회적 비용은 수백억원에 달한다”며 “더이상의 외주화 추진은 접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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