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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시대' 한국서 황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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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시대' 한국서 황혼길?

입력
2014.06.1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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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선호·반일정서에도

일본 대중문화 개방되기 전부터

예외적 인기 자랑했던 지브리 작품

작년 "전범 미화" 비판받았던

미야자키 '바람이 분다' 참패 이어

다카하타 '가구야공주 이야기'

시작부터 초라한 성적표

지브리 신작 애니메이션 '가구야공주 이야기'는 일본 전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지나친 일본색도 흥행에 장애로 작용했다. 대원미디어 제공
지브리 신작 애니메이션 '가구야공주 이야기'는 일본 전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지나친 일본색도 흥행에 장애로 작용했다. 대원미디어 제공

어린 자녀와 일본 도쿄를 여행하는 한국의 부모들이 곧잘 들르는 곳이 있다. 도쿄 외곽 미타카에 위치한 지브리 박물관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표 브랜드인 스튜디오 지브리(지브리)의 역사와 현재를 파악할 수 있는 장소다. 디즈니랜드나 유니버설 스튜디오 같은 대형 놀이공원은 아니지만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영화 팬의 상상을 자극했던 ‘토토로’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 지브리의 명작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가늠할 수 있어서다. 유쾌한 단편 애니메이션을 볼 수 있고 ‘천공의 성 라퓨타’에 나왔던 거대한 로봇병사도 실물로 만날 수 있다.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올 때쯤이면 지브리 작품들 속 여러 캐릭터를 활용한 기념품들을 한 손 가득 사게 마련이다. 적어도 30~40대 한국인들에게 지브리는 디즈니보다 더 넉넉한 품을 지닌 꿈의 공작소다.

일본영화는 한국 극장가에서 그리 우대 받지 못해왔다. 2000년대 중반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 등 작은 영화들이 1만 관객을 돌파하며 잔잔한 바람을 일으킨 적은 있다. 우에노 주리와 오다기리 조 등이 한국에서도 스타 대접을 받았으나 환호성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일본 열도가 지진으로 가라앉는다는 소재를 택한 ‘일본침몰’이 2006년 94만560명을 동원하자 한국 극장가는 이변으로 평가했다. 한국 관객의 유난한 할리우드 선호와 국민 정서 바닥에 웅크린 반일 정서가 일본영화의 흥행에 큰 걸림돌이 됐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예외였다. 1998년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기 이전부터 젊은이 사이에서 인기였다. 복제된 비디오 테이프에 담긴 지브리 애니메이션이 대학가를 유행처럼 떠돌았다. 특히나 미야자키 하야오가 연출한 영화들은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 301만5,165명을 기록했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서울에서만 93만7,459명이 봤다. 상대적으로 흥행 재미를 못 본 ‘벼랑 위의 포뇨’도 152만1,842명과 만났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라는 수식이 붙으면 관객들은 지갑을 순순히 열었다. 미야자키 감독이 기획한 ‘마루 밑 아리에티’도 108만3,746명이 보며 ‘지브리 불패’ 신화를 이어갔다. 2000년대 후반 불법다운로드가 횡행하고 영화 DVD타이틀이 염가로 팔릴 때 지브리 DVD는 웃돈이 얹혀 거래됐다.

4일 지브리의 신작 ‘가구야공주 이야기’가 개봉했다. 한국 영화 관계자들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조용히 상영을 시작했는데 흥행 성적도 너무 얌전하다. 9일까지 1만2,580명이 봤다.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14년 만에 내놓은 작품치곤 실망스러운 흥행 결과다. 다카하타 감독은 미야자키 감독과 지브리를 공동 설립했고, ‘반딧불이의 묘’와 ‘이웃집 야마다군’으로 한국에도 열성적인 팬층을 형성했었다. 지브리란 브랜드가 한국 극장가에서 더 이상 통하지 않음을 ‘가구야공주 이야기’는 방증한다.

반전은 지난해 일어났다. 미야자키 감독이 은퇴작이라고 단언한 ‘바람이 분다’가 가파른 내리막길 역할을 했다. 동정적인 시선으로 전범을 바라본다는 비판을 받으며 10만6,439명이 관람했다. 미야자키 감독의 전작들과 비하면 참담한 흥행 결과였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일본 감독의 마지막 작품이 역사 왜곡 논란에 휘말렸으니 관객들의 반응이 차가울 수 밖에 없었다. 한일 관계가 냉탕에만 머무는 상황과 맞물리며 더 외면 받았다. ‘가구야공주 이야기’의 초라한 흥행 성적표도 ‘바람이 분다’ 논란과 무관치 않다.

10년 넘게 한국 애니메이션 시장을 쥐락펴락했던 지브리의 급격한 몰락은 씁쓸하기만 하다. 출구를 찾지 못하고 강경으로만 치닫는 한일관계를 보는 듯해 더 그렇다. 지브리가 한국 팬들에게 남긴 추억도 온전할 수 있을까. 일본에 대한 국민 감정이 악화된다면 지브리가 키워준 환상은 환멸로 대체될지 모른다. 지브리의 황혼은 이래저래 많은 상념을 던진다.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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