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골목 낙서 진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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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낙서 진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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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10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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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로... 사회적 메시지로...

주점, 차량 튜닝숍 등 벽면에 업주 요구 + 작가 스타일 반영 젊은 고객들 반응 뜨거워

그래피티의 기본은 스프레이지만 붓이나 손가락을 이용하거나 다양한 물건을 벽에 붙여 표현한 것까지도 넓은 의미의 그래피티에 포함된다.

텅 빈 벽을 바라보던 시선이 바닥을 뒹구는 수 십 개의 스프레이 캔으로 향했다. 신중하게 캔을 골라 든 그의 손놀림은 벽 앞에서 거침이 없었다. 캔에서 번갈아 뿜어져 나온 아크릴 물감이 텅 빈 벽을 알록달록 채워갔다.

지난 9일 새벽 경기 화성의 한 피트니스 클럽에서 그래피티 작업을 하고 있는 레오다브. 생동감 넘치는 팝업 스타일의 그래피티를 완성하는데 6시간이 걸렸다.

지난 7일 그래피티 작가 레오다브(Leodav 최성욱 36)를 만난 곳은 철거촌 담벼락도 어두컴컴한 굴다리도 아니었다. 힙합 바지를 입지도 않았고 치렁치렁한 목걸이도 걸지 않았다. 개업을 며칠 앞둔 대전의 한 대학가 주점에서 레오다브는 경력 16년의 그래피티스트가 아닌 인테리어 디자이너였다. 작업을 막 끝낸 벽면에서는 기하학적인 그래피티 특유의 문양 대신 업주의 익살스런 캐릭터가 웃고 있었다. “업주가 요구하는 방향을 최대한 살리면서 나만의 스타일을 지키려 노력한다. 1년에 150건 정도 작업해서 먹고 사는데 지장 없을 만큼 번다.”

빈민가, 반항, 불만, 욕설, 낙서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했던 거리 예술 그래피티가 뒷골목을 뛰쳐나왔다. 그래피티 인테리어에 대한 젊은 고객들의 반응도 기대 이상이다. 인천 부평구에서 자동차 튜닝 샵을 운영하고 있는 백운진(30)씨는 “특히 젊은 손님들이 그래피티를 배경으로 셀카도 찍으며 좋아한다. 미래에 튜닝 공장을 크게 지을 수 있다면 공장 전체를 그래피티로 채우고 싶다”고 말했다.

인천 부평의 자동차 튜닝숍. 업주는 벽면을 가득 채운 그래피티가 점포 이미지를 개선해 줬다고 만족해했다.

그래피티의 상업화에 대한 비판도 없지 않다. 레오다브는“젊은 세대가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나 자신도 어렸을 때는 작품만 열심히 하자는 주의였지만 이제는 생계가 우선이다. 그래야 우리만의 창작 활동을 할 수 있다”고 단언했다.

삼청동 골목길엔 안중근 의사 등 독립운동가 그려 역사 알려 전시회, 교육프로그램도 마련

동료 킹아울(KingOwl 임진수 36)은 그들만의 창작 활동에 대해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초등학생들이 3.1절을 ‘삼점일절’로 읽는다는 뉴스를 접한 후 유관순 열사 순국일인 9월 28일 새벽 삼청동 골목길에 열사의 초상을 그렸다. 그 후 안중근 이봉창, 김구 등 독립운동가의 초상을 차례로 그려 넣었다.”

화물트럭 짐칸에 그려진 안중근 윤봉길 의사의 그래피티 초상화
서울 삼청동 골목 담벼락에 그려진 이봉창 의사 초상. 가상의 현재 모습은 요리사이다.
유관순 열사의 모습을 담은 그래피티
백범 김구 선생을 산타클로스로 표현했다.

뒷골목을 빠져 나온 그래피티의 여정은 전시회와 교육 프로그램으로도 이어진다. ‘낙서, 역사가 되다’전이 열리고 있는 경기 부천복사골문화센터. 팝아트를 연상시키듯 캔버스에 다양한 형태로 표현된 그래피티는 이미 낙서가 아닌 예술작품이 되어 있었다. 킹아울은 지난 겨울 인천의 한 중학교에서 진행한 교육 프로그램을 회고하며 “그래피티를 통해 아이들의 창의력과 표현력이 점차 좋아져 뿌듯했지만 대부분의 교육 프로그램이 지속되지 못하고 단발성 체험행사에 그치고 있는 점은 아쉽다.”고 밝혔다.

대전 서구의 한 주점. 그래피티로 표현한 업주의 캐릭터가 눈에 띈다.

두 그래피티스트는 작별 인사 대신 자신들의 계획을 슬며시 꺼내 보였다. “동인천 만석동과 부평 심정동, 서울 문래동과 삼청동, 압구정동 토끼굴과 홍대 앞을 잇는 그래피티 투어 코스를 개발해보고 싶다.” 밤샘 인테리어 작업을 위해 경기 화성의 한 피트니스 센터로 출발하며 두 사람은“업주가 특별한 요구사항 없이 맘껏 그려보라고 했으니 왠지 좋은 작품이 나올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박서강기자 pindropper@hankookilbo.com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류효진기자 jskn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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