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 가기 전에 코드표 익히라고 뽑아 주고 떠났는데...
야구도 많이 좋아해 아빠 회사서 유니폼 선물 가족들 아들 대신 안고 눈물
“아빠, 기타 코드표 뽑아놨으니 꼭 익혀 두세요.” 안산 단원고 안중근(17)군은 “나도 베이스 기타 좀 배워야겠다”는 아버지에게 수학여행 전날 밤 숙제를 냈다. 그러나 숙제 검사를 해야 할 안군은 세월호 침몰 참사 54일째인 8일 오후 11시 20분쯤 선체 4층 좌현 앞쪽 객실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같은 날 수습된 유니나(28) 교사에 이은 292번째 희생자다.
안군의 부모는 9일 오전 1시쯤 전남 진도 팽목항 신원확인소에 도착한 신장 180㎝정도 되는 남성의 시신을 보고는 “아들이 맞다”며 절규했다. 11시간 뒤에 나온 DNA 대조결과도 부모와 일치했다. 어머니 김모(44)씨는 “(시신 부패로) 윗니 안쪽 보조교정기만 확인했다. 너무 오래 못 봐서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씨는 이틀간 온몸이 아프고 체기도 있었는데 싹 가셨다고 했다. “중근이를 만나려니 아픈 데도 없어지더군요.”
아버지(46)는 이날 오후 진도 실내체육관 입구 오른쪽 모퉁이에 걸린 야구 유니폼을 매만지다 가방에 넣었다. 상의 뒷면에는 ‘안중근’과 ‘21’(안군은 2학년 7반 21번)이 새겨져 있었다. 그는 “그렇게 좋아하던 야구용품 한 번 사준 적이 없는 게 후회된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야구 꿈나무이던 안군이 중학교 때 친구들과 경기 중 어깨 인대를 크게 다친 뒤 야구공을 잡지 못하게 했다.
유니폼은 아버지의 직장인 두산그룹에서 안군이 두산베어스 팬이라는 소식을 듣고 선물한 것이다. 가족들은 구조작업을 벌이고 있는 바지선 위에서, 사고 해역을 돌아보는 소방헬기 안에서, 기약 없는 기다림을 이어갔던 팽목항에서 이 유니폼을 안군 대신 끌어안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안군이 돌아오면 같이 가려고 잘 보관했던 야구장 관람표 10장도 이젠 쓸모 없게 됐다.
가족들은 안군이 어린 나이에도 인내와 절제력이 뛰어났다고 했다. 어머니는 “지난 겨울방학 기타 독주회를 준비하던 아이의 손가락에 물집이 가득해 걱정했더니 ‘그냥 과정이야’라며 열심히 기타를 쳤다”며 흐느꼈다. 누나(19)는 “컴퓨터 게임을 할 때도 정해진 시간을 어기는 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또 안군은 종종 경기 시흥에 있는 할아버지 댁에 가 옥수수를 심는 등 일을 거들던 착한 손자이기도 했다. 가족들은 안군이 심은 옥수수는 절대 먹지 못할 것이라며 가슴을 쳤다.
안군의 가족은 이날 체육관에서 두 달 가까이 입고 덮었던 옷가지와 이불 등을 정리했다. 가족들은 남은 실종자 가족들과 악수하고 포옹했다. 자원봉사자들도 위로와 안타까움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안군 가족을 배웅했다.
안군의 시신은 구급차로 진도 실내체육관에 도착한 뒤 헬기를 타고 안산으로 떠났다. 뒤따르는 헬기에는 오열하는 안군의 가족들이 탔다. 아버지는 헬기 안에서 기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베이스 기타 꼭 연습할 겁니다.” 안군의 빈소는 안산 단원구 군자장례식장에 차려졌다.
글,사진 진도=손현성기자 hsh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