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의 화가
얼마 전 한 지인이 그림을 그리는 재능이 유전되느냐고 물었다. 나의 대답은 생물학적으로 유전되는 것은 아니지만 경험에 의해 학습되어질 확률이 높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의 아이도 미술에 재능이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실제로 주변에 그림 그리는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의 자녀들이 미술을 하고 있다. 여기서 미술의 장르는 꽤 넓다. 순수 미술과 디자인, 공예뿐 아니라 건축, 미용, 패션 등을 포함한다.
미술 재능이 자녀에게 전해지는 것은 부모의 영향 외에도 사회ㆍ문화적 이유가 한 몫을 한다. 내가 어렸을 적에만 해도 화가는 사회적으로 환대받는 직업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미술적 재능을 필요로 하는 분야와 직업의 세계가 다양해졌다. 부모들도 아이들의 창의성을 키우고 정서적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미술지도에 높은 관심을 갖는다.
본래 아이들은 만들고 쓰고 그리고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고, 거리낌이 없다. 미술이 ‘놀이’라는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술은 누구나가 좋아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더욱이 미술의 범위가 넓어졌고, 사회적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에 미술을 놀이의 개념으로 대하는 일상에서 미술 재능의 대물림은 당연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화가는 자녀를 어떻게 가르칠까. 내게 아이의 미술교육을 묻는 사람들이 많다. 나의 대답은 아이에게 직접 그림을 가르치지 않고, 스스로 찾고 즐기게 한다는 것이다. 행여 나의 욕심이 아이에게 전달돼 부담이 될까봐, 나의 가필이 아이만의 독자적인 고유성을 잃게 할까봐 훈육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림은 자유로워야 하고 자신만의 독창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의 꿈에 관심을 갖고 단지 동행하는 것이다.
나의 아이는 어릴 때는 손에 힘이 없어서 선긋기도 분명하지 않았고 색을 칠해도 꼼꼼하지 못했다. 주제를 크게 그리지도 않았고 깨끗하게 마무리 하지도 못했다. 유아 때 색칠하기를 하는데, 사람의 피부와 머리색을 총 천연색으로 칠하고 있었다. 그러자 주변의 부모들이 피부색을 연주황으로 칠하라고 조언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아이가 표현하고 싶은 대로 그냥 놔달라고 했다.
아이는 색을 평범하지 않게 사용했다. 색은 주관이고 인상이고 감각이다. 나는 아이가 상식에 의해 그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아이는 개체의 속성과는 다른 색을 칠하고 있을지언정 하나의 화면에서 나름의 배색의 관계를 찾아갔다. 그리고 마치 인상파의 그림처럼 하나의 사물을 단 하나의 색으로 칠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아이의 색채사용의 독특함을 칭찬했다.
아이는 화가인 엄마에게 그림을 배우고 싶어 했지만, 어릴 적에는 특히 부모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나의 언어에 맹목적으로 추종할까봐 피했다. 그리고 아이의 다른 재능을 살피지 못할까봐 직접 가르치지 않았다. 그러면 아이는 서점에 가서 필요한 책을 찾았고, 인터넷으로 필요한 자료를 찾기도 했다.
화가라는 직업만 알았던 아이의 꿈은 점차 일러스트레이터, 푸드코디네이터, 메이크업 아티스트로 다양해지고 있다.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 위해 컴퓨터 타블렛이 필요하다면 용돈을 모아 구입하게 하고, 쿠키를 만든다고 팬을 태우면 요령을 알려주고, 야단치지 않았다.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될 거라며 자신의 얼굴을 화장하면 객관적으로 평가해줬다. 나는 오로지 아이의 호기심을 풀어주기 위해 노력했고 흥미로워 하는 것을 경험하게 해줬다.
그리고 아이가 미술시간을 준비하면 나는 많은 붓들과 물감들을 챙겨줬다. 친구들과 나누어 사용하라는 의미다. 재료가 그림의 차별성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지만 초등학생인 딸아이에게 경쟁을 가르치고 싶지 않았다. 미술은 함께 공유하고 함께 즐기고 함께 행복한 삶을 만들어가는 것인 만큼 그 과정에서도 함께 나누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고 싶은 것이다.
교육은 스스로 아이들이 창의성을 이끌어내고 지식과 지혜를 찾아가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어야 한다. 더욱이 인간의 감성을 다루는 미술교육은 지식의 강요가 돼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교육은 동행하는 것이 참된 의미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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