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영화에서나 본 장면이 이젠 현실로
심사위원 ⅓이 "우크라 소년"으로 믿었다
인공지능 '유진' 튜링테스트 64년 만에 첫 통과
영화 ‘트랜센던스’에서 천재 인공지능(AI) 과학자 윌 캐스터 역을 맡은 조니 뎁이 이렇게 말한다.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의 두뇌를 다 모아도 단순한 인공지능에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SF 속에서 흔히 보고 듣던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일이 픽션을 벗어나 현실이 되려 하고 있다. 용어가 생겨나고 반세기도 넘게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하던 AI 기술이 최근 수년간 획기적으로 진전하고 있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세계적인 정보기술(IT) 업체들이 AI 개발에 사운을 걸고 나선 것도 큰 몫을 한다.
영국 레딩대는 8일 ‘AI 연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이 제안한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첫 컴퓨터가 나왔다고 발표했다. 이 대학이 주최한 ‘튜링 테스트 2014’행사에서 슈퍼컴퓨터 ‘유진 구스트만’에서 구동되는 ‘유진’이라는 프로그램이 심사 기준을 통과했고 영국 왕립학회도 이 사실을 인정했다는 것이다. 튜링이 가능성을 예고한지 64년 만이다.
튜링은 1950년 학술지 마인드에 게재한 논문에서 ‘생각하는 기계’를 구별해 내는 방법을 제안했다. “기계가 내놓은 반응을 인간 반응과 구별할 수 없다면 그 기계는 생각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기계 혹은 컴퓨터와 대화하지만 상대방이 컴퓨터인지 사람인지 구별해 낼 수 없다면 그 기계는 진정한 의미에서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이번 테스트에서 유진은 5분 길이의 텍스트 대화를 통해 심사위원 중 3분의 1 이상에 ‘진짜 인간’이라는 확신을 줬다. 블라디미르 베셀로프, 유진 뎀첸코, 세르게이 울라센 등 러시아 연구진이 개발한 유진은 우크라이나에 사는 13세 소년이라고 자신을 밝히고 심사위원들과 대화를 나눴다. 해당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위원 중 33% 이상이 유진을 ‘호기심 많은 우크라이나 소년’으로 믿었다.
초스피드 기술의 진화
사람인지 구분 못할 수준
영국 왕립학회서도 인정
"미래 IT 기술의 결정체"
구글·페이스북 등 개발 경쟁
영국 왕립학회가 공식으로 인정한 ‘인간처럼 생각하는 AI’는 유진이 처음이지만 튜링 기준을 부분적으로 충족한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첫 사례는 1966년 정신과 의사의 대화 방식을 차용한 ‘일라이자’(ELIZA). 미국 학자 요제프 와이젠바움이 정신과 의사가 처음 대면한 환자와 상담하는 상황을 가정해 만들었는데 일부 사람들은 일리이자를 진짜 정신과 의사로 생각했다. 1972년에는 정신분열증 환자의 반응을 흉내 내도록 설계된 ‘패리’(PARRY)라는 프로그램이 대화 상대 일부를 속이는데 성공했다.
컴퓨터 과학의 한 분야인 ‘자연언어 처리’기술이 급속도로 발달한 1990년대부터는 이보다 뛰어난 ‘채팅기계’들이 속속 등장했다. 1990년대 초에는 ‘PC 치료사’, 1990년대 중반에는 ‘줄리아’, 19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에는 ‘앨리스’라는 채팅 프로그램이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 프로그램 모두 상황을 제한하지 않은 일반적인 ‘튜링 테스트’를 통과하지는 못했다.
이 테스트는 튜링이 처음 제안할 때부터 지적했던 것처럼 AI의 실현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세계적인 언어철학자인 존 설 전 버클리대 교수는 어떤 언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그 언어의 특정한 자극-반응을 기계적으로 익히는 것만으로 그 언어가 가능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며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다고 해서 기계가 이해하거나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고 간주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스탠퍼드대 AI 기술 이정표 제시
하지만 이번 튜링 테스트 통과가 아니더라도 ‘트랜센던스’의 윌 박사가 말한 ‘AI’ 실현의 단초는 이미 만들어져 있다. 그 동안 지지부진했던 AI 연구의 이정표가 될 획기적인 연구로 평가 받는 2012년 미 스탠퍼드대의 실험 덕분이다. 앤드루 응구 교수가 이끄는 이 대학 연구팀은 유튜브에 있는 1,000만 점의 사진을 무작위로 주고 컴퓨터에게 그 사진 정보 중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을 선택해서 재현하도록 프로그램했다.
컴퓨터는 3일 밤낮을 돌아간 뒤 그 엄청난 양의 데이터 속에 있는 물체를 인식해 그림 한 가지를 그려냈다. 바로 고양이 얼굴이었다. 유튜브 사진 속에 고양이가 많았을 거라는 것은 짐작이 가지만 그 많은 정보 중에서 왜 고양이 얼굴인지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컴퓨터가 마치 인간처럼 혼자서 점, 선, 형상으로 이어지는 단계적인 사고를 해나가 특징적인 형상을 인식하고 그것을 재현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컴퓨터가 형상을 인식하는 방식은 고양이의 특징을 컴퓨터에 인식시킨 뒤 거기에 맞는 화면을 찾아내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IT 업계에서는 스탠퍼드대 실험과 같은 컴퓨터의 동작을 ‘딥 러닝’(Deep Learning)이라고 부른다. 응구 교수의 ‘고양이’ 논문이 발표됐을 때 세계가 흥분한 것은 이런 방식으로 전세계 수십억 네티즌이 인터넷에 올린 문서자료, 동영상, 사진 등의 엄청난 데이터를 마치 휴지가 물을 먹듯 빨아들여 컴퓨터(AI)가 스스로 학습해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엿봐서인지도 모른다.
거대 IT기업들 AI 기술 열띤 경쟁
구글은 지난 1월 말 모토롤라 모빌리티를 29억 달러 남짓에 중국 컴퓨터업체 레노보에 매각한다고 발표했다. 매각 후에도 중요 특허를 구글이 그대로 갖는 조건 등이 붙긴 했지만 구글이 불과 1년 반 전 레노보를 125억 달러에 샀던 걸 감안하면 지켜보는 사람이 오히려 한숨이 나올 정도다. “모바일 기기 시장은 과당 경쟁이어서 관련 기기 제조 기반을 모두 갖추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다”는 게 구글 최고경영자(CEO) 래리 페이지의 설명이다.
이 거래만 보면 세계 최대 인터넷 서비스업체 구글도 가끔은 엄청난 손해를 보는구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구글이 무엇을 팔고 무엇을 사들이는가다.
레노보 매각 발표가 있기 이틀 전 구글은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AI 기업 ‘딥마인드’(DeepMind) 인수를 발표했다. 딥마인드는 시뮬레이션, 전자거래, 게임 등 분야 등에 AI 연구를 적용하는 기술 개발 기업이다. 특히 기계 학습과 시스템 뇌과학을 이용해 범용 학습 알고리즘 만드는 것을 중점 연구 분야로 삼는다. 구글은 앞서 지난해 3월 DL의 선구자인 제프리 힌튼 캐나다 토론토대 교수의 벤처기업도 매수했다.
마치 이에 대항이라도 하듯 페이스북은 그 해 12월 AI연구소를 열어 힌튼의 제자를 연구책임자로 앉혔다. 페이스북은 최근 다양한 얼굴 사진에서 개인을 특정하는 기술인 ‘딥 페이스’(Deep Face)를 발표하기도 했다. 페이스북에 올라 있는 사진 440만점 중 4,030명의 얼굴 사진을 옆 모습만 보고 정면 얼굴까지 추정해낸 기술이었다.
IT 기업들이 AI에 눈독 들이는 것은 컴퓨터의 인식 능력이 높아지면 당장 IT 기기의 조작이 간편해져 이용자가 늘게 되고, 이용자가 늘면 사업의 토대가 되는 데이터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기업 경쟁력에서 절대 우위에 설 가능성이 그만큼 커진다는 의미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이 대열에는 중국도 합류하고 있다. 중국 최대 포털 바이두는 지난해 실리콘밸리에 AI연구소를 설립했고 지난 달 새로 소장을 선임했다. 바로 스탠퍼드대 연구를 이끌었던 응구 교수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