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 두 딸 잃은 고석 어린이안전재단 대표
"진상 규명 제대로 안 하면 또 다른 참사로 이어질 게 뻔해
여러 참사 유가족들과 재난 안전 가족협 만들기로 "
“그 동안 하나도 변한 게 없네요. 이 무책임한 나라는….”
지난달 29일 서울 송파구 마천동 어린이안전교육관 사무실에서 만난 고석(52) 한국어린이안전재단 대표는 사무실 벽 한 켠에 걸린 세월호 희생자 추모 노란 리본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한번 말려들면 우리 애들 생각이 또 나고, 그러면 며칠은 힘들어요. 그런데 또 말려들었어요.”
1999년 6월 30일 유치원생 19명과 교사 4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기 화성시 ‘씨랜드 청소년수련의 집’ 화재로 그는 소망유치원에 다니던 쌍둥이 딸 가현(당시 6세) 나현(6) 양을 동시에 잃었다. 서른 일곱의 젊고 짱짱했던 아버지였던 그의 삶은 상상조차 해본 적 없던 방향으로 치달았다.
“애들 장례를 치르고 정신과 치료도 받았지만 그 허탈감은 지금도 말로 설명을 못 합니다. 어른들 잘못으로 희생된 가여운 우리 애들을 위해 뭐라도 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살겠더라고요.”
사고 직후 그는 유가족 대표로 사고원인 규명 촉구와 보상문제를 이끌었다. 이듬해엔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을 설립했다. 희생자 24명 중 어린이 19명의 부모들은 한마음으로 보상금을 반납해 1억5,000만원을 모았고 유족 측 변호인단도 수임료 5,000만원을 보탰다. 차량 카시트 무상보급, 어린이 안전체험 학습장 운영, 교통사고 예방교육 등으로 그는 전국을 돌며 지난 14년 간 쉴새 없이 일했다. 그것은 자신의 살점 같던 두 딸을 앞세운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세월호 참사 약 한달 뒤 고씨는 국제전화 한 통을 받는다. “고 대표, 상황이 심각하던데, 저 사람들 자네가 좀 나서서 도와주면 안되겠나?” 씨랜드 화재로 아들 도현(6)군을 잃은 뒤 더 이상 대한민국에 살 수 없다며 이듬해 메달과 훈장을 반납하고 뉴질랜드로 떠난 전 필드하키 국가대표 김순덕씨의 남편 김모(52)씨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번복되는 실종자 수, 우왕좌왕하는 구조작업, 유족들의 진상규명 촉구를 선동으로 보는 정부. 씨랜드 참사 유족들에게 세월호는 곧 씨랜드였다. 씨랜드 유족들 모두 세월호 참사가 말 그대로 ‘남 일’이 아니었다.
안산 화랑유원지 합동분향소와 진도 팽목항을 차례로 방문하고 온 고씨는 대구 지하철 화재,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 태안 해병대 캠프 사고 등 역대 참사 유가족들의 연락처를 일일이 구해 ‘재난안전 가족협의회’를 만들자고 제안을 했다. 참사를 겪은 희생자 유족들이 주축이 되지 않는다면 뚜렷한 진상규명도 없이 또 다른 참사가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고씨는 시신이 모두 수습된 후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이 걷게 될, 아름답지만은 않은 과정도 예상하고 있다. 국가가 책임이 있는 사고에 대해 적절한 보상과 지원을 받는 게 당연하지만 ‘피붙이’를 ‘돈’으로 계산한다는 자책에서 자유롭지 못할 게 뻔하다는 것이다. 씨랜드 사고 당시 경기도는 방화사건 피해자에게 적용됐던 1인당 6,000만원을 보상금으로 제시했고 공무원 비리에서 촉발된 국가사고임을 감안해 달라는 유족들과 팽팽히 맞섰었다.
‘저는 소망유치원에 다닙니다. 저는 선생님을 사랑합니다. 선생님을 믿습니다.’ 고씨의 쌍둥이 딸 나현이가 캠프를 떠나기 전 공책에 썼던 말이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아이들이 더 이상 죽지 않도록, 어른을 믿을 수 없는 나라가 되지 않도록. 어린이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죽을 때까지 노력할 겁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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