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닥불' 읽고 30여년 짝사랑
2년간 세밀한 자료 조사도
"어투·시어·태도 등 모든 것
선배 시인 닮고자 전전긍긍"
기존 백석연구 800개 넘지만
거의 부분적 조명에 그쳐
지나친 신격화 내용도 수정
“그 동안 시를 쓰면서 백석의 어투, 시어는 물론 시를 전개하고 마무리 짓는 방식과 세계에 반응하는 시인으로서의 태도까지 닮아보려고 나는 전전긍긍했다.”
안도현 시인이 백석 평전을 냈다. 스무 살 무렵 백석의 시 ‘모닥불’을 읽은 이후 30여 년 간 그를 짝사랑해왔다는 시인이 백석의 생애 전반을 객관적인 자료를 근거로 재구성한 책이다. 시인인 그가 펴낸 첫 평전이기도 하다.
백석에 대한 연구는 이전에도 활발했다. 고형진 고려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백석 시를 읽는다는 것에서 지금까지 나온 백석 관련 단행본, 학위논문, 평론, 에세이 등의 연구물이 800개가 넘는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대부분 부분적 연구와 조명에 그쳐 백석의 생애 전반을 아우르며 문학세계의 변천사를 읽어내는 작업은 흔치 않았다.
백석 평전에서 시인은 백석이 태어난 1912년부터 북한 땅인 함경남도 삼수군 관평리에서 눈을 감은 1996년까지, 한 치의 세월도 빼놓지 않고 담으려고 노력했다. 분단이라는 특수 상황 때문에 남에서든 북에서든 백석에 대한 연구가 쉽지 않았지만 2년 간의 집중적인 자료 조사와 수십 년 간 쏟아온 애정을 동력으로 백석의 생애를 성공적으로 추적해냈다. 문학평론가 이동순은 “조각조각 단편적으로만 흩어져 있던 백석의 생애를 완전히 하나의 끈으로 꿰었다”고 평가했다.
책을 엮는 과정에서 백석에 대해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을 밝혀내고 잘못된 내용을 상당 부분 수정하는 성과도 거뒀다. 저자는 백석의 연인이었던 자야(김영한 여사)가 쓴 에세이 내 사랑 백석과 다른 자료들을 비교 대조한 결과 세 번으로 알려졌던 백석의 결혼 횟수가 두 번 이하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또 백석이 해방 후 북한에서 거의 모든 기관지의 편집위원으로 위촉될 수 있었던 배경에 조선작가동맹 위원장이었던 소설가 한설야의 비호가 있었다는 정황을 포착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자야가 1939년 삼천리에 발표한 수필 두 편을 처음으로 발굴하기도 했다. 시인은 또 조광 창간호에 실린 ‘나와 지렝이’, 같은 잡지에 ‘백정’이라는 필명으로 실린 ‘늙은 갈대의 고백’, 만주의 만선일보에 ‘한얼생’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했다는 ‘고독’ 등 백석 작품으로 알려졌던 시들이 실은 백석의 것이 아니라고 규정했다.
9일 만난 시인은 “백석에 대한 좁쌀만한 오류도 바로 잡고자 하는 열정으로 책을 썼다”며 “백석에 대한 관심이 과열되다 보니 그를 지나치게 신격화하거나 다른 사람의 시를 백석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례가 많아 그런 것들을 수정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백석이 북한 문단에서 완전히 사라진 1962년부터 작고한 1996년까지 어떤 생활을 했는지 밝히지 못했다는 사실에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북한에선 백석을 기억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북한에) 갈 때마다 백석에 대해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변은 한결같이 ‘말년에 전원생활을 하다가 돌아가셨다’는 말 뿐이었다”고 했다. “우리의 눈에는 백석이 북한 정권에 복무했던 문인으로 비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가 문단 전면에 나섰던 때와 숙청 당했던 시기를 연구해보면 북쪽에 남아 있던 마지막 문학주의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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