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대책 100일 만에...
이번엔 3주택으로 완화
신뢰 잃고 혼란만 부추겨
“조세정책 책임질 기재부
국회·국토부 뒤에 숨었나”
오락가락 정책에 비난 일어
정부의 임대소득 과세 방침이 또 흔들리고 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원칙을 지키겠다더니 올 들어 벌써 두 번째 뒷걸음질치는 분위기다. 스스로 만든 원칙을 뒤집기 위해 새로운 논리가 동원되는가 하면, 부처마다 분위기도 달라 시장 혼란만 커지고 있다. 지난해 여론의 뭇매를 맞고 대통령까지 나서 원점 재검토로 돌아섰던 세제 개편안의 혼선을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발단은 2월 26일 정부가 내놓은 ‘주택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이다. 그간 사실상 세금을 물리지 않던 2주택자의 월세 소득에 대해서도 과세하겠다는 게 핵심이었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1호 정책이었던 만큼 ‘임대소득 과세 형평성’ 측면에서 무게가 실렸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세금 폭탄에 직면한 은퇴자 등 고령층 임대업자를 중심으로 불만이 터져 나왔고,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정부는 불과 일주일 뒤인 3월 5일 보완책을 발표했다. 2주택 이하 임대소득(전세 포함) 2,000만원 이하에 분리과세(세율 14%) 적용을 2년간 유예하는 등 비난 여론을 받아들여 살을 붙인 것이다. 여전히 ‘원래 안 내던 세금을 미뤄주겠다’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잇따랐지만 정부는 “더 이상의 수정안은 없다”고 못박았다.
그러나 4월 이후 주택 거래량이 급감하고, 가격마저 떨어지고 있다는 부동산업계의 불만이 극에 달하자 수정안 요구가 다시 탄력을 받았다. 5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전달보다 30% 가량 급감하고, 가격 역시 1% 남짓 빠졌다. 업계는 모든 원인이 마치 임대소득 과세방안에 있는 것처럼 몰고 갔다.
결국 지난 5일 서승환 국토교통부 장관은 업계 간담회에서 임대소득 과세 방침 수정을 공식화했다. 분리과세 적용 대상을 임대소득 2,000만원 이하일 경우 3주택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임대소득 예외 없이 과세 원칙 천명→2주택 과세 완화→3주택 이상 과세 완화로 거듭 정책이 후퇴하고 있는 셈이다. 2ㆍ26대책이 발표된 지 100일만이다.
서 장관이 내세운 수정 논리는 시장 충격 최소화와 다주택 차등 철폐. 그는 “보유 주택 수에 따라 차별을 두는 게 적절한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 국토부는 종합부동산세(종부세)의 차별 해소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한발 더 나갔다. 종부세는 다주택자에게 불리한 대표적인 부동산정책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세정 권한을 쥔 기획재정부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다. 기재부 측은 “정부의 임대소득 과세 원칙은 변한 게 없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밝히고는 있지만, 과세 완화를 주장하는 국회나 국토부 뒤에 숨어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들끓는다. 실제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8일 “종부세의 경우 세제 권한이 없는 국토부가 거론할 문제가 아니다”라면서도 “임대소득은 국회 입장도 있으니 논의 과정에서 변할 여지도 있다”고 살짝 발을 뺐다. 정부 한 관계자는 “임대소득 과세의 경우 완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는 점을 기재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조세정책을 책임지는 기재부가 전면에 나설 수 없으니 뒤로 숨는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만약 임대소득에 대해서 다주택자의 차별을 해소해주려면 종부세 역시 다주택자 차별을 없애는 게 옳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대소득 과세만 손을 대는 건 결국 조세 원칙도 없이 시장에 휘둘리고 있음을 스스로 자인하는 결과일 뿐이라는 것이다. 노영훈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부가 과세 방침을 정한 만큼 과세할 건 과세하고 부당한 기준은 바꿔야지 지금처럼 오락가락하면 신뢰만 잃고 혼란만 부추긴다”고 지적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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