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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이 앗아 간 502명 참사 잊었나... '제2삼풍 뇌관' 널려 있다

입력
2014.06.0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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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아산서 신축 오피스텔 기우뚱

58세대 입주 앞두고 대형사고 터질 뻔

'삼풍' 참사 후 5000㎡ 이상 건축물

감리업자 선정 입찰제로 개선했지만

소규모 공사장은 여전히 사각지대로

지난달 12일 준공을 열흘 앞두고 갑자기 왼쪽으로 20도 주저앉은 충남 아산의 오피스텔 앞에서 경찰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인근 아산테크노밸리 산업 단지 근로자들이 입주한 뒤였다면 대형 참사가 또다시 발생할 뻔했다. 아산=연합뉴스
지난달 12일 준공을 열흘 앞두고 갑자기 왼쪽으로 20도 주저앉은 충남 아산의 오피스텔 앞에서 경찰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인근 아산테크노밸리 산업 단지 근로자들이 입주한 뒤였다면 대형 참사가 또다시 발생할 뻔했다. 아산=연합뉴스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로 292명의 인명을 잃게 한 원인은 과적과 과승선, 이를 제재 못한 시스템의 구멍으로 지적됐다. 제도가 개선됐다고 믿었지만 21년 뒤 판박이처럼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1999년 씨랜드 화재,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그리고 지난해 태안 해병대캠프 사고 등을 지켜보며 많은 사람들이 슬퍼하고 분노했지만 그때뿐이었다. 왜 우리는 인재(人災)를 막지 못하는가. 한국일보가 최근 20년간 발생한 대형참사 5건을 추적 분석한 결과 제도 개선은 실효성이 없었고, 정부는 사고수습과 진상규명에서 늘 신뢰를 잃었다. 사고 백서조차 자화자찬식이거나 허술하기 짝이 없어 아무 교훈도 되새기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를 다시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 대형 참사 그 후를 살펴본다.

“아휴, 이 정도 규모의 건물에 들어갈 철근 치곤 턱없이 모자라죠, 대충 봐도 알 정도인데.”

지난달 23일 오전 11시, 충남 아산시 둔포면 석곡리 J오피스텔 철거 현장에서 만난 철거전문업체 관계자가 혀를 찼다. 502명의 목숨을 앗아간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후 이런 일이 또 일어날 줄은 상상조차 못한 일이었다. 지난달 12일 오전 8시 7분, 충남 아산시 둔포면 석곡리에서 7층짜리 J오피스텔(주거용)이 갑자기 20도가 기운 것이다. 6평짜리 오피스텔 58세대에 입주할 예정이던 충남 아산 테크노밸리산업단지 근로자들이 입주한 상태였다면 인명피해가 적지 않았을 상황이었다.

1995년 삼풍 참사 떠올리게

철거 작업은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었다. 포크레인 3대와 덤프트럭, 그리고 인부 6명이 얼마 남지 않은 철근과 콘크리트 잔해 더미 사이를 부지런히 오갔다. 25톤짜리 덤프트럭은 이날까지 철근과 콘크리트 잔해를 120번 가까이 퍼 날랐다. 현장 관계자는 “중장비가 지나다 보면 바닥이 움푹 들어가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 일대 지반이 약하다”고 말했다. 이 일대는 예전에 논이었던 지역이다.

기초공사를 더 엄격히 해야 하는 곳인데도 대한안전진단연구원이 충남도청과 아산경찰서 등의 의뢰로 조사해 보니 철근이 설계보다 20~30% 모자라고 건축물을 지탱하기 위해 18~24m 암반까지 도달해야 할 기초파일(땅에 박는 지름 40㎝의 쇠기둥)은 지하 14m까지만 박혔다. 파일 개수도 설계 도면상의 79개보다 29개나 적었다. 대한안전진단연구원의 조성찬 대표는“철근을 빼먹고 기초파일도 허술하게 박은 시공사와 이를 눈감아 준 허술한 감리 모두 문제”라며 “공기 단축과 비용절감을 위해 감리업자와 시공사가 한통속이 된 것”이라고 밝혔다. 시공사인 D건축사무소는 파일 개수를 줄여 1억원 정도의 공사비용을 줄였다.

참사 후 무엇이 바뀌었나

삼풍백화점 참사 후 건설업계에서는 설계업자가 감리를 도맡는 관행이 부실시공을 걸러내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비용 절감을 이유로 형식적인 감리를 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삼풍백화점의 설계와 감리를 도맡은 우원건축사무소는 삼풍건설이 감리비용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건물 골조공사가 끝날 때까지 상주감리를 하지 않았고 골조공사 후에도 무자격자에게 공사 관리감독을 맡겼다.

허술한 감리는 애초 백화점 바닥 두께가 설계 치수보다 5㎝ 얇은 40㎝로 시공된 것을 그냥 넘겼고 지붕도 설계(90㎏/㎡)보다 4배나 무겁게(345㎏/㎡) 시공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 애초 계산된 하중을 견디기 위해선 1.2m 외벽에 가벼운 유리돔 지붕을 덮어야 했지만 실제 시공 땐 3m 외벽에 철근 콘크리트 지붕을 설치했다. 기둥 지름이 32인치에서 23인치로 줄어 약해졌고, 매장 공간을 넓히느라 설계도에 있던 내벽도 없앴다. 5층에 새로 설치한 기둥이 4층까지 설치된 기존 기둥과 맞물리지 않기도 했다. 이런 총체적인 부실 시공과 허술한 감리로 건물은 결국 무너져내렸다. 이후 연면적 5,000㎡ 이상 대형건축물은 입찰을 통해 감리업자를 선정하도록 규정이 바뀌었다.

5층의 롤러스케이트장을 식당가로 바꾸는 용도 변경을 허가하고 건축 허가 당시 1만9,500㎡였던 매장 면적을 4만㎡까지 늘리는 무단 설계변경 신청을 승인해주는 등 삼풍백화점의 각종 인허가 과정에서 공무원들이 뇌물을 받고 무단 설계변경을 눈감아 준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런 비리를 차단하기 위한 시스템도 마련됐다. 공무원과 건설업자가 면전에서 만나지 못하도록 건축 인허가는 온라인으로만 하도록 했고 공무원들이 1~2회 이상 공사 현장을 찾아 관리 감독하던 업무도 준공 허가 전 감리보고서만 제출 받는 것으로 간소화됐다.

붕괴 못 막은 관리감독 구멍

하지만 이런 제도 개선은 아산 오피스텔 붕괴를 막지 못했다. 설계자가 감리까지 겸할 수 있는 연면적 5,000㎡이하 소규모 공사장은 여전히 사각지대로 남아 아산 J오피스텔은 설계자가 감리까지 도맡았고, 일부 건설업체들은 공무원들이 더 이상 공사현장에 나와 관리감독하지 않는 점을 악용하기 시작했다.

유착과 로비를 우려해 바뀐 제도는 역설적이게도 건축허가?관리감독권한이 있는 아산시청에 면죄부를 줬다. 건설업자와 면전에서 만나지 못하도록 규정이 바뀌어 공사가 잘 되고 있는지, 감리는 꼼꼼한지 현장을 관리 감독할 권한도 책임도 같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준공허가 전 건축사가 제출하는 감리보고서를 책상에서 검토해 사인만 하면 된다. 건축사가 허위로 감리보고서를 제출해도 확인할 방법이 없다. J오피스텔이 며칠만 더 버텼다면 준공허가가 난 뒤 훨씬 끔찍한 피해를 입었을 게 뻔하다.

처벌 법규가 있어도 실제로는 가벼운 형량에 그치는 사법관행도 문제다. 사고를 낳을지 모른다는 위험부담이 크지 않다는 뜻이다. 그나마 백화점, 병원, 집회시설 등 다중이용시설 부실시공에 대해서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지만(건축법 106조), 일반건축물(주택)의 경우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110조)이 고작이고 대부분 벌금형에 그친다. J오피스텔도 주거용이라 일반건축물에 해당된다. 이런 미약한 처벌 때문에 시공 능력이 떨어지는 ‘보따리 건설업체들’이 대충 지어서 빨리 팔고 떠나겠다는 생각으로 형편 없는 원룸이나 빌라 등을 양산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겪은 최근에야 인명피해가 큰 사고를 고의든 과실이든 저지른 범죄자에게 징역 100년까지 가중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특례법이 추진되고 있다.

감리 역시 마찬가지다. 부실시공을 막는 첫 번째 안전장치인 감리를 허술하게 해도 이를 처벌하는 수준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인데 대부분 벌금형에 그치고, 감리 면허가 취소되는 경우도 별로 없다.

한 건축공학과 교수는 “제도가 아무리 강화돼도 나쁜 마음을 먹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 관리감독이 중요하다”며 “그러나 관청이 시공사, 감리업체의 도덕성에 기대는, 소극적으로 관리감독을 하는 구조이다 보니 오히려 부실공사와 허술한 감리를 부추기는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아산=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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