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오 산업부장 young5@hk.co.kr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현재 배출전망치(BAU) 대비 30% 감축하겠다.”
“2030년까지 발전소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05년 대비 30% 감축하겠다.”
한국과 미국 정부가 지난주 잇따라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발표했다. 앞의 목표가 한국 것이고, 뒤가 미국이다. 우리 목표가 훨씬 적극적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기업규제로만 받아들인다면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인데, 미국보다 더 적극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여 기업의 뒷다리를 잡으려 하는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우려는 지난 2일 열린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관련 공청회에서 재계 대표들이 내놓은 입장에서도 드러난다. 그 중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은 “전 세계에서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뿜어내는 중국(28.6%)이나 미국(15.1%)도 소극적인데 배출비중이 1.8%에 불과한 우리나라가 앞장서 감축해서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온실가스가 주범인 지구온난화는 ‘진위’가 아니라 ‘속도’의 문제다. 세계기상기구(IPCC)는 “개도국 산업화로 온실가스 소비량이 급속히 늘면서 21세기말이 되면 섭씨 2~4도가 더 올라갈 것”이라고 결론 지었다. 이렇게 되면 남극ㆍ북극 빙하가 녹아 전세계 해수면이 12m까지 더 높아질 수 있다. 대도시들이 밀집한 전세계 해안지역들이 위험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혹시 86년이나 남은 문제이니 해결하는데 아직 시간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IPCC의 전망치가 최악의 가능성을 과소평가한 것이란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최근 통계학은 전통 통계학이 무시해 온 ‘두꺼운 꼬리’(fat tailㆍ정규분포 곡선의 양극단)에 주목한다.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던 전세계적 경제위기가 10여 년을 주기로 반복되자, 이 이론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구온난화 속도 예측도 통계학상 두꺼운 꼬리의 영역에 해당된다. 최선의 시나리오대로 된다면 문제를 해결할 시간이 충분할 수도 있지만,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한다면 지구온난화는 이미 되돌이키기에 늦었을 수 있다. 하버드대 경제학과 마틴 와이츠먼 교수는 “IPCC의 결론은 꼬리를 너무 성급하게 잘라낸 것이며, 금세기 말 지구온도가 섭씨 10도 이상 올라갈 확률이 5%, 20도 이상 올라갈 확률도 1%나 된다”고 추산한다. 하나뿐인 지구를 놓고 벌이는 도박이기 때문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확률이다.
‘온실가스 감축=경제 부담’이라는 주장도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 경제는 거의 전량 수입하는 석탄,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의존도가 83%에 달한다. 재생에너지의 비중은 2%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지구온난화 속도가 예상보다 더디더라도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경제체질인 것이다.
게다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시급히 찾아야 하는 상황에서 온실가스 절감 산업은 커다란 잠재력을 지닌 분야다. 전력망에 정보통신(IT)기술을 결합해 에너지 효율을 최적화하는 기술인 ‘스마트그리드’의 경우 전세계 시장은 연평균 7% 이상씩 급성장해 2020년 총시장규모가 4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에너지저장, LED조명, 그린카, 이산화탄소포집저장 기술 등 저탄소 녹색기술 분야는 우리가 반드시 선점해야 할 유망 성장산업이다.
당장 저렴하다고 화석연료 의존 경제를 유지하려 한다면, 이런 유망 산업은 경쟁국에 뒤쳐질 수 밖에 없다. 우리 경제체질을 ‘저탄소 소비형’으로 바꾸려면 적절한 자극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가장 효과가 검증된 것이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다. 이는 기업들이 정해진 온실가스 할당량보다 덜 분출하거나 더 분출한 온실가스를 주식시장처럼 서로 사고 팔도록 하는 제도다.
재계도 배출권 거래제의 도입 자체를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각 분야 배출권 할당량이 너무 적으니 늘려달라는 것이다. 특히 발전ㆍ철강ㆍ석유화학 등의 업종은 당장 부담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이런 재계의 주장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배출권 할당량을 너무 느슨하게 정한다면, 이는 우리 경제 미래를 이끌 유망 산업의 발목을 잡는 것일 뿐 아니라 후손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결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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