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春秋)는 중국 춘추시대 노(魯)나라 은공(隱公) 원년(BC 722년)부터 애공(哀公) 14년 (BC 481년)에 걸친 12대 242년의 연대기다. 당시는 주(周) 왕실의 지배력이 약화, 각지의 제후국이 세력 확장 경쟁에 여념이 없던 때였다. 제후국의 패권다툼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전국(戰國)시대로 넘어가기 직전의 이 시기를 춘추시대라고 부르게 된 것도 이 책 때문이다. 공자가 직접 썼든 역대 사관들의 기록을 재정리해 엮었든, 그의 뜻은 그대로다.
▦ 맹자는 ‘세상에 도가 쇠미해(世衰道微), 삿된 말과 포악한 행동(邪說暴行)이 생겼다. 신하로서 임금을 죽이고(臣弑其君) 자식이 아비를 죽이는(子弑其父) 자가 생기자 공자가 두려워 춘추를 지었다(孔子懼作春秋)’고 했다. 아울러 ‘나를 알아주는 것도 오직 춘추, 나를 죄주는 것도 오직 춘추(知我者其惟春秋乎, 罪我者其惟春秋乎)’라는 공자의 말도 인용했다. 한편 사기는 ‘공자는 춘추를 지으며 쓸 것은 쓰고 깎아낼 것은 깎아냈다’고 썼다.
▦ 공자가 춘추를 집필(편집)한 뜻을 더듬을 만하다. 춘추는 땅에 떨어진 도를 일으켜 세우기 위한 ‘역사의 거울’이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저마다의 자리매김(正名)에 충실한지를 가리고, 옳은 것은 옳다고 부추기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깎아 내리는 정정당당한 기록이 있어야 가능한 거울이다. 이 ‘춘추필법’이 궁형(宮刑)의 치욕을 견디고 사기 집필에 매진해 역사 기록이 얼마나 엄중한 일인가를 보여준 사마천이 떠받든 역사서술의 대원칙이다.
▦ 논어가 ‘군자는 당당하되 다투지 않으며, 어울리되 편당하지 않는다’(君子矜而不爭群而不黨)고 밝힌 것도 춘추필법의 요체라 할 만하다. 오늘로 창간 60주년인 한국일보의 사시가 ‘춘추필법의 정신’ ‘정정당당한 보도’ ‘불편부당의 자세’다. 개인으로든 신문으로든 시류(時流)에 휩쓸리지 않았고, 시시비비(是是非非)하되 정해서 편들지 않았으니 반쯤은 지킨 셈이다. 이순(耳順)의 한국일보에 국민의 소리가 나날이 시끄럽게 밀려들기를!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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