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서울 신촌 일대에서 열린 제15회 퀴어(Queerㆍ성 소수자)문화축제의 카 퍼레이드 행사가 군사 작전을 방불케 하는 긴박한 분위기 속에서 겨우 치러졌다. 보수단체 회원들이 도로를 점거한 채 필사적으로 퍼레이드를 막았기 때문이다.
이날 축제는 오후 2시부터 역대 최대규모인 1만5,000여명(경찰 추산 7,000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국내외 동성애자, 성전환자 등 성소수자는 물론 이성애자들도 대거 몰려 연세로 ‘차 없는 거리’를 가득 메웠다. 주한 미국, 독일, 프랑스 대사관도 이번에 처음으로 공식 부스를 열고 행사에 참가했다. 마커스 하츠만 독일 대사관 공보담당자는 “개인의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에 반대한다”고 참가 이유를 밝혔다.
행사의 절정인 퍼레이드는 오후 5시 30분 시작됐다. 주최측은 앞서 연세로-연세 교차로-신촌 기차역-신촌 지하철역으로 이어지는 약 2㎞ 구간을 행진하겠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무지개색 천막과 깃털, 풍선 등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퍼레이드 차량 5대에 시동이 걸렸지만 연세교차로에서 열린 ‘신촌동성애반대청년회의’ 회원 등 1,000여명의 ‘맞불집회’에 가로막혔다.
주최측은 명물거리로 급히 경로를 바꿨다. 하지만 인근 공원에서 동성애 반대 집회를 하던 어버이연합 회원 10여명이 경찰 차단망을 뚫고 차도에 드러누워 퍼레이드 행렬은 다시 발목을 잡혔다. 보수 기독교인 300여명도 도로 점거에 가세했다. 이들은 경찰에 둘러 싸인 채 “세월호 애도 기간에 동성애 축제가 웬 말이냐”,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동성애로부터)보호한다”고 외쳤다. 대치는 4시간 넘게 이어졌다. 경찰은 이들에게 여섯 차례 해산 명령을 내리고 과격 시위자 4명을 연행했다.
축제 참가자 민모(28ㆍ회사원)씨는 “세월호 정부 규탄 시위 때는 몇 분 만에 3차 해산명령을 내리고 참가자들을 바로 연행했던 경찰이 이들에게만 미온적으로 대응한다”고 꼬집었다. 경찰 관계자는 “반대 시위자 중 노약자들이 많아 해산에 어려움이 있었고 도로 점거에 따른 교통 체증도 적어 기다렸다”고 해명했다.
오후 10시쯤 주최측은 퍼레이드를 포기하는 것처럼 신촌 지하철역 방면으로 차량을 전부 철수했다가 연세로를 향해 기습 퍼레이드를 시작했다. 한채윤 퍼레이드 팀장은 “어떤 집회이든 강제 연행과 폭력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해 경찰에 반대 집회자 연행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참가자들과 충돌이 불 보듯 뻔한 보수 기독교 단체의 문화행사 신청을 받아준 서대문구청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서대문구는 퀴어축제를 승인했다가 세월호 참사 추모를 이유로 취소했다. 이에 따라 퀴어축제는 ‘차 없는 거리’가 시작된 이날 오후 2시부터 열렸다.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