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규 워싱턴특파원 tglee@hk.co.kr
세월호 참사에 오버랩 될 미국 이야기를 찾는다면 보훈병원 스캔들이 있다. 미국인은 군인에 대해 영원한 부채를 짊어지고 있다고 여긴다. 그들을 전장에 내보내 싸우도록 한 대신 퇴역 이후에는 그들의 건강과 장애 문제는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재향군인을 담당하는 보훈부는 직원이 28만명으로 15개 정부 부처 가운데 넘버 투 수준이다. 이 명예로운 퇴역군인을 치료하는 보훈병원에서 스캔들이 터졌으니 미국사회가 발칵 뒤집힌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4월 말 내부 폭로로 시작된 스캔들은 보훈병원들이 상부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치료를 원하는 재향군인들을 대기자 명단에 올려 놓고 치료를 지연시켰고, 그 중 많은 이들이 대기 중 숨졌다는 것이다. 보훈병원들이 이중장부를 만들어 상부에 보고할 때 진료를 신속하게 해 대기자가 거의 없는 것처럼 속여 포상금까지 타낸 것은 승객을 화물로 취급한 세월호 선사의 경영수법과 다를 바가 없다. 가짜 장부에는 대기 기간을 14일로 적어놓고 실제로는 7개월이나 기다리게 한 경우가 허다했다. 긴 시간 대기하다 치료도 못 받고 숨진 사람이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만 40명이나 되는 것으로 폭로됐다. 내부폭로 이후 전수조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현재까지는 피닉스뿐 아니라 전국 26개주의 보훈병원들에서 이런 일이 자행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식 관료주의, 성과주의가 빚어낸 희생자가 세월호 참사 수준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베테랑의 생명과 관련된 사건 성격 상 버락 오바마 정부는 초당적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가장 곤경에 처한 사람은 오바마 대통령과 에릭 신세키 보훈장관이었다. 대통령 하야 얘기가 거론되지 않은 것만 빼면 세월호 정국과 차이가 없어 보일 정도다. 외국 기자가 보기에도 심하다 싶을 정도의 뉴스들이 지면을 장식하고 전파를 탔다. 친 오바마 정부 성향의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나 NBC방송도 예외가 아니어서, 언론이 대통령 비위를 맞추려고 하다 또 다른 의혹을 자초하는 경우는 없었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리스트인 데이나 밀뱅크는 오바마 대통령이 뒤늦게 이 문제를 처음 인정하는 기자회견장에 지각한 것부터 따지고 들었다. 백악관 집무실에서 회견장인 브리핑룸까지 30m밖에 안 되는 거리를 예정시각보다 13분이나 늦은 것을 보면 이번 사태를 해결할 것이란 기대를 걸 수 없다는 식이다. 밀뱅크는 오바마 대통령이 조사결과가 확인되면 관련자를 처벌하겠다고 조건을 달자, 대통령에게 필요한 것은 ‘만약’이란 조건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할 눈과 귀라고 펜을 휘둘렀다. 그런 반면 백악관 비서실장은 오바마 대통령이 스캔들 보고를 받고 불같이 화를 냈다며, 대통령을 보호하려 동분서주했다.
세월호 참사와 보훈병원 스캔들에서 비교되는 큰 차이는 책임을 지거나 지우는 과정일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만 해도 스캔들 초기 사퇴 압박을 받은 신세키 장관을 위해 더 큰 책임은 대통령에 있다며 화살을 자신에게 돌렸다. 조지 W 부시 정부에서 직언을 해 영혼이 있는 군인으로 존경 받은 신세키 장관도 베테랑과 그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스캔들 한달 뒤 진상을 국민에게 알린 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한 잘못을 공개 사과하고 책임을 졌다.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은 그의 장관 사퇴를 발표하면서, 38년 군 베테랑의 명예를 존중하는 말로 그를 예우했다. 보훈병원 스캔들은 정치, 사회 스캔들로 확산되고, 대통령과 주무장관이 타깃이 되는 과정이 세월호 사태와 닮았다. 사건 성격이 국민 생명과 관련된 인재라서 속도감 있게 확산된 점도 그렇다. 다르다면 그 처리 과정이 지극히 상식적이란 사실일 것이다. 정부, 정치권, 언론이 각자 위치에서 자기 역할에 맞게 누구나 공감하는 방식으로 풀어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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