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가 우수학생 선점, 일반고는 낙오생 집합소로 '교육 환경 양분' 개선 모색 "정부는 자사고에 우호적, 학부모 반발도 예상, 의도만큼 쉽지는 않을 것"
"정부는 자사고에 우호적, 학부모 반발도 예상, 의도만큼 쉽지는 않을 것"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당선인이 6일 자율형사립고 운영성과 평가에 일반고에 미치는 영향을 새롭게 반영하기로 한 까닭은 학력저하 등 일반고의 위기가 자사고에서 비롯됐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그는 선거기간 동안 “자사고를 폐지해야 일반고가 살아난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현장에선 “지정 취소가 녹록치 않을 것”이라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지정 취소 가능한 평가지표
현재 경희고ㆍ이화여고ㆍ한가람고 등 서울 지역 14개 자사고가 올해 운영성과 평가를 거쳐야 한다. 전국적으로는 49곳 중 25곳이다. 지난 2010년 3월 개교한 학교들이다. 초중등교육법에 따라 해당 지역의 교육감은 운영평가를 5년마다 실시, 자사고를 지정취소 또는 재지정 할 수 있다. 하지만 현행 평가항목은 학생충원율과 전학비율, 선행학습 방지 노력, 교육과정 편성ㆍ교과 운영의 적절성, 재정자립도 등이어서 큰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 한 재지정 취소가 쉽지는 않다.
새로 부임할 교육감이 일반고에 미치는 영향을 자사고 평가지표에 포함하겠다는 것은 우선선발권을 가진 자사고가 우수학생을 선점함으로써 주변 일반고들의 학력이 저하되고, 경제력에 따라 교육환경이 양분되는 현실을 타개하겠다는 의미다. 조희연 당선인 캠프 관계자는 “실패한 정책인 자사고는 물론이고, 자사고 운영성과 평가기준 역시 재검토하려는 것”이라며 “세부 평가항목은 다음 주 출범할 교육감직 인수위원회에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교육격차 해소 기여하나
진보교육감의 당선으로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이 가속화하면 교육격차 해소에 기여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자사고의 평균 등록금은 일반고보다 3배 비싸 부유층만 선택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았다. 임재홍 전국교수노동조합 부위원장은 “자사고 등 특권학교가 많아지면서 교육격차가 심화됐는데, 이를 줄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사고는 2010년 이명박 정부의 ‘고교다양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신설됐다.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 확보를 통해 학생의 소질ㆍ적성 개발이 도입 취지였다. 하지만 자사고는 이를 무기 삼아 국어ㆍ영어ㆍ수학 중심의 교과운영으로 또 다른 입시학원으로 전락했다. 과학고ㆍ외고 등 특목고에 가지 못한 상위권 학생들이 몰리면서 ‘특목고-자사고-일반고-특성화고’로 이어지는 학교 계층화가 공교해졌다. 자사고ㆍ특목고 대비 고교 입시가 부활했고, 학생들간의 위화감도 조성했다.
그러는 가운데 일반고에서는 학력저하의 악순환이 계속됐다. 입학생의 성적이 전반적으로 낮고, 교육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교육청의 지원에서도 외면당했다. 그러자 학부모와 학생들 사이에선 일반고 기피 현상이 계속 심해졌다. 서울 영등포구의 한 고교 교사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자사고, 특목고에 몰리면서 일반고는 설 곳을 잃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시민교육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설문조사에서 일반고 교사 1,105명 중 81.8%는 “자사고 정책이 일반고 위기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또한 이번 평가 대상인 자사고 25곳은 재정자립의 원칙을 저버리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로부터 100억원을 지원받거나, 교육과정 상 ‘수학I’을 편성해 놓고 ‘수학Ⅱ’ ‘기하와 벡터’ 같은 시험문제를 출제하는 등 선행학습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장에선 “쉽지 않을 것” 예상
하지만 현장에서는 진보 교육감들이 ‘일반고 살리기’ 정책의 일환으로 내건 자사고 지정취소가 당선인 측이 공언하고 있는 만큼 녹록치는 않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의 한 자사고 교사는 “지정취소를 하려면 교육부 장관과 협의해야 하는데, 현 정부는 자사고에 우호적이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자사고의 교장은 “올해 평가 대상인 자사고 25곳에 다니는 학생들만 해도 1만명이 넘는데,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면 학부모들이 가만히 있겠냐”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조 당선인 캠프 관계자는 “교육부 장관과 협의를 하도록 돼 있을 뿐 자사고 지정취소 권한은 전적으로 교육감에게 있다”며 현 정부와의 마찰이 일반고 전환을 추진하는 데에 걸림돌이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다만 그는 “잘 운영 중인 자사고까지 강제적으로 일반고로 전환할 수는 없고, 학생ㆍ학부모들의 피해가 최대한 없도록 평가기준을 만들어 부실 자사고 대상 재검토를 하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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