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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극(機內劇), 블랙박스

입력
2014.06.0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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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주 시인ㆍ극작가

대학로에 새로운 블랙유머 연극이 하나 출몰했다. 연극 블랙박스다. 제작은 극단 에스(주성근 대표)가 맡았고 기획은 한강아트컴퍼니가 맡았다. 장르는 기내극이란다. 기내라는 상황 속에서 벌어진다는 이야기의 극 설정이 흥미롭다. 추락을 겪어야만 알 수 있는 진실이라는 부제가 흥미롭다. 아니 골몰해 볼만한다. 블랙박스는 사고 이후에야 우리가 열어볼 수 있는 진실이다. 하지만 블랙박스를 열어본다고 하더라도 그 속에 있던 진실을 우리는 다 알아볼수 있는 것일까? 작가는 그곳에 의문이 간다고 했다. 이 작품의 연출(유영봉)은 이 공연은 시대를 살아가는 어떤 개인들의 블랙박스를 복원시키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우리 앞에는 눈으로도 보고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지금도 앞으로도 그런일들을 겪어야만 할 것이라고. 하지만 “우리 삶의 비밀을 캐내고 진실을 되살리는 일은 불편하지만 외면할 수 없는 잔혹한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비행기가 이륙한 뒤 밤 11시부터 자정까지 구름 속에 머무는 한 시간 동안 기내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이야기는 언어학자인 60대 카파(최광덕ㆍ이창직 배우)와 비행을 처음 경험하는 원양어선 30대 선원 미하일(권택기ㆍ곽현석 배우), 스튜어디스(오선아ㆍ곽정아)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륙과 동시에 조종실에서는 구름 속에서 하나의 불빛을 발견한다. 관제탑에서 보내는 신호라고 생각하고 비행기는 불빛을 따라가지만 구름 속을 헤멜 뿐이다. 착륙할 곳을 찾지 못한 채 비행기는 1시간 동안 활공을 반복한다. 하지만 지상의 시간으로는 며칠 째 비행기는 실종된 상태로 보고되고 있다. 마치 미아가 된 것처럼 비행기는 구름의 꿈속으로 들어온 것처럼 우리가 해독할 수 없는 시차 속에서 활공을 하고 있다. 멀미를 한다. 우리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허공과 언어의 한 가운데서 이야기의 시차가 깊어간다.

추락을 경험해야만 알 수 있는 진실이라면 삶은 잔혹하고 냉혹한 실재다. 연극 블랙박스는 기내라는 상황을 가지고 그러한 인생의 굴곡과 현대인의 불안을 보여주고자 한다. 주인공들은 불안을 벗어나고자 끊임없이 의미 없는 대화를 오고 가며 관객에게 웃음을 전달한다. 블랙코메디는 현실을 은유하며 공연이 끝날 때까지 기내에 함께 머물고 있다. 복잡하게 엉켜 있는 삶, 희망, 그리고 죽음들은 극 속에 속도감 있는 전개로 녹아 들어 위트와 언어놀이와 침묵으로 녹아 있다. 작가는 이 이야기가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시시껄렁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가령 알고 보니 누가 가발을 쓰고 있다거나, 누가 안 본 사이에 성형수술을 했다거나, 빨대를 씹어서는 안된다거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파는 대경산업애플 손지압마사지는 훌륭하다는 일상의 지혜 같은 루머 속에서 우리는 참 살아가고 있다고, 비행기가 곧 떨어진다는 기내방송을 들으면 벗었던 신발부터 제일 먼저 찾아 신는 게 인간이라고, 그럴지도 모른다. 어쩌면 불안 때문에 아무 소용도 없는 신발을 신는 인간의 모습 속에 인간의 연약한 희극성과 비극성이 공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작가는 우습지만 그런 지점에 이야기를 던져놓고 그게 무슨 쓸모가 있다고 믿고 싶은 게 삶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하긴 그게 부조리일테니까.

부조리적이면서도 초현실적인 미묘한 분위기, 기승전결식의 스토리 전개 보다는 언어의 부조리함이 부각된 공연이었다고 말하는 의견도 소중하다. 부조리는 항상 이야기의 전달에 목적을 두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리 안에 존재하는 어떤 ‘상태’에 주목한다면 이 이야기는 당신에게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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