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교육ㆍ불평등과 싸워 온 저자
뉴욕 노숙자 시설서 만난
도시 빈민의 현실 낱낱이 고발
"도시 빈민 많은 공립학교에는 충분한 자원ㆍ교사 보장해야"
부모ㆍ개인 책임 떠넘기는 美, 죄책감 덜려는 변명에 불과
에릭은 뉴욕에서도 가장 가난한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마약 거래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아이들이 푼돈을 벌기 위해 불법을 일삼는 곳. 어머니는 이 곳을 벗어나고 싶어 했다. 몬태나 주의 작은 마을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어머니도 여동생도 친절한 주민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삶에 만족스러워 했지만 에릭은 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교를 그만두고 여자친구와 동거를 시작했다. 말썽 많은 친구들과 어울리다 강도질을 해 구속되기도 했다. 어머니는 아들이 마약이나 약물에 빠져 있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에릭이 친구들과 함께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을 찾았다. 에릭의 방에서 얼마쯤 지나 총성이 울렸고 어머니는 아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경찰은 자살로 결론 내렸다. 한동안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던 어머니는 술에 빠져 지내다 췌장암에 걸렸고 몇 년간의 투병 생활 끝에 세상을 떠났다.
뉴욕 사우스브롱크스에 위치한 17층짜리 마르티니크 호텔은 20세기 초만 해도 화려함을 자랑하던 곳이었지만 1980년대 중반 노숙자 격리를 원하는 뉴욕 시에 의해 노숙자 수용시설로 바뀌었다. 호텔 소유주는 덕분에 1988년 뉴욕 시가 도시의 명예를 위해 수용시설을 폐쇄하기까지 연 800만 달러를 챙길 수 있었다. 에릭은 저자 조너선 코졸(78)이 1985년부터 2년간 마르티니크 호텔 건물을 꾸준히 방문하던 때 만난 아이들 중 한 명이다.
지금 마르티니크 호텔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30년 전의 풍경을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뉴욕의 화려한 번화가에서 불과 한두 블록 떨어진 이 곳에서 사회의 중심부로부터 내쫓긴 1,400여명의 아이들과 400여명의 부모들이 폭력과 마약, 추위와 굶주림, 불결한 위생과 싸우며 살았다.
미국의 차별적인 교육과 사회 불평등에 맞서 싸워 온 교육자이자 작가인 저자는 1985년 겨울 마르티니크의 현실을 처음 목도했다. 그는 “미국에서 이처럼 끔찍한 궁핍을 목격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라고 했다. ‘재 속에서 피어난 불꽃(Fire in the Ashes)’라는 원제의 이 책은 저자가 마르티니크를 방문하던 시절 알게 된 여러 가족과 25년간 연락하며 이어온 인연을 하나씩 풀어낸 것이다.
피에트로 로카텔로의 아들 크리스토퍼는 에릭과 인종, 나이가 다를 뿐 거의 비슷한 비극을 겪었다. 어릴 때부터 푼돈을 벌어야 했고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범죄와 마약을 했다. 교도소와 뒷골목을 오가던 그는 결국 헤로인 과다 복용으로 세상을 떠났다.
빈민 지역 아동들의 문제를 ‘부모의 결함’이나 ‘개인의 책임’ 때문이라고 표현하는 것에 저자는 “미국이 빈민에게 죄를 짓고 있다는 혐의를 부인하려고 갖은 애를 쓰는 학계와 정치계의 악당들이 의존하는 최후 수단”이라고 비난한다.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중 하나인 뉴욕의 치부를 보는 건 매우 우울하고 참담하다. 하지만 그 속엔 희망도 있다. 지옥 같은 환경 속에서도 학업에 두각을 나타내 우수한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한 아이도 있고, 약물과 범죄에 빠져 황폐한 삶을 살다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새 삶을 시작한 아이도 있다. 하지만 그 같은 승리와 성공은 대부분 헌신적인 교사의 도움이나 인정 많은 후원자, 자선적인 성향의 학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저자는 자선의 규모가 아무리 크다 해도 “제도적인 형평성과 공정성을 보장하는 공교육의 성과를 대체할 수 없다”며 “빈곤이 만연한 지역의 공립학교에 넉넉한 자원과 소규모 학급 구성, 충분한 자격을 갖추고 충분한 보수를 받는 교사들을 보장하여 모든 아이들이 배움을 만끽할 기회를 누리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