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 재플린 리마스터링 등 슈퍼스타 사라진 시장서 유행
음원·미공개 트랙의 음악적 쾌락에 리미티드 에디션 구매 과정 등
몸이 음악과 만나는 경험 더해져
‘스테어웨이 투 헤븐’으로 유명한 레드 제플린의 앨범 세 장이 3일 재발매됐다. 밴드의 기타리스트이자 프로듀서였던 지미 페이지가 리마스터링한 이들 음반은 모두 아홉 장에 달하는 레드 재플린의 정규 앨범을 전부 리마스터링하는 프로젝트의 출발점이다. 이 작업은 전 세계 3만장 한정판의 슈퍼 딜럭스 박스세트를 포함해 CD와 LP 그리고 HD 디지털 음원 등을 순차적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당연히 이전에 공개되지 않았던 스튜디오와 라이브 레코딩, 그리고 오리지널 곡의 미발표 버전들이 수록된다. 최초로 공개되는 곡들도 있다. 2집의 보너스 음반에 수록된 연주곡 ‘라 라’와 3집의 수록곡 ‘브론-Y-아우르 스톰프’의 원형이 된 블루스 ‘제닝스 팜 블루스’ 등이 그렇다.
음악 팬들은 재발매 앨범에 관심이 높은 편이다. 특정 밴드나 음악가에 대한 추억을 간직한 사람들 말이다. 사실 대부분의 재발매 앨범은 더 이상 신곡을 듣지 않는 음악 팬들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한 목적이 강하다. 새로운 음악 팬들을 발굴해 지속적인 시장을 만들어야 하는 음악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인을 발굴하고 신곡을 판매하는 것이지만, 재발매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자연히 음악으로부터 멀어진 세대들을 위한 프로젝트다. 1960년대에 록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대가 나이를 먹은 1970, 80년대 후부터 재발매가 유행했던 것이 상징적이다. 덕분에 음악 산업은 ‘신인 발굴(과 새로운 음악 경향의 제시)→음악 팬과 시장의 확장→나이 먹은 팬들을 위한 재발매(와 음악가의 지속적인 활동)’이라는 순환 구조로 작동한다. 재발매의 유행은 음악 시장이 안정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바꿔 말해 시장을 뒤흔들 만큼 영향력이 큰 슈퍼스타가 없다는 얘기다. 음악을 소개하고 소비하는 채널이 한정될 때 힘의 구조는 쉽게 만들어지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음악을 소비하는 21세기에는 마이클 잭슨이나 조용필 같은 슈퍼스타가 등장하기 어렵다. 그래서 문득, 레드 제플린의 재발매 프로젝트에 여러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 중에서 특히 관심이 가는 건 이런 재발매 음반들이 제공하는 경험이다. 두 가지로 나누고 싶다. 먼저 음악의 경험이다. 음악 그 자체가 주는 쾌락이라고 해도 좋을 텐데, 리마스터링 음원과 미공개 트랙들로부터 얻는 감각이다. 다른 하나는 음악적 경험이다. 이것은 음악 그 자체가 아니라 음악과 만나는 과정을 통한 쾌락이다. 레드 제플린의 ‘리미티드 에디션’을 구하러 인터넷 쇼핑몰과 음반점을 기웃거리고 그렇게 구한 박스 세트의 포장을 뜯고 부클릿을 꺼내 뒤적이고 마침내 음반을 플레이어에 넣은 다음 버튼을 눌러 막 시작하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일련의 과정. 사실 스트리밍의 시대에 음반을 듣는다는 것은 굉장히 귀찮은 일이다.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음반을 듣는 것은 몸의 기억에 새겨진다. 몸에 담긴 경험과 기억은 강렬하다. 그래서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 점에서 21세기의 재발매는 단지 시장을 떠난 구세대의 지갑을 노리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요컨대 이 귀찮음으로부터 야기되는 음악적 경험이야말로 대량복제의 디지털 시장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가장 독특하고 차별적인 쾌락이 아닐까.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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