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에 맡기는
초단기 예금에 적용
"시중에 돈 풀어라"
은행들에 '경기 부양' 지침
"계좌이체 효과만 있을 뿐
투자 촉진 쉽잖을 것" 전망
금리가 마이너스? 상식적으로 납득이 잘 안 되는 얘기다. 그런데 신중하기로 정평이 난 유럽중앙은행(ECB)이 시중에 돈을 풀고 디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이 방식을 택했다. 금리가 마이너스가 되면 도대체 어떤 상황이 되는 걸까.
ECB가 마이너스 금리를 적용한 것은 시중은행이 ECB에 맡기는 하루짜리 초단기 예금 금리다. 5일(현지시간) 열린 금융통화정책회의에서 이 금리를 제로(0.0%)에서 -0.10%로 내렸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은행에 돈을 맡기는 건 안전하게 조금의 이자라도 받기 위해서다. 하지만 금리가 마이너스가 되면, 이자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수수료 혹은 벌금을 내야 하는 셈이 된다.
국내에서도 개인 고객들에게 사실상의 마이너스 금리가 적용된 사례가 있다. 제일은행(현 SC은행)을 인수한 외국계 사모펀드 뉴브리지캐피탈은 2001년 예금잔액이 10만원 미만인 경우 월 2,000원의 계좌유지 수수료를 물렸다. 소액예금의 경우 오히려 계좌유지에 비용이 든다는 이유였다. 사실 해외에서는 적지 않게 통용되는 방식이었지만, 한국 고객들의 정서와는 전혀 맞지 않았다. 계좌를 방치해뒀다가 야금야금 빠져나가는 수수료 때문에 잔고가 바닥이 난 걸 확인한 고객들은 강력히 반발했고, 제일은행은 결국 2005년 이 제도를 폐지했다.
실질금리가 마이너스였던 적은 많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은행이 예금고객에게 주는 금리에서 세금을 제하고 난 것이 물가상승률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은행에 돈을 맡겨두면 뛰는 물가를 감안할 때 오히려 손해였던 셈. 그래도 명목금리는 플러스였기 때문에 장롱 속에 돈을 넣어두는 것보다야 은행에 맡기는 것이 나았다.
하지만 ECB의 마이너스 금리는 앞선 사례들과는 전혀 다르다. 개인이 아니라 시중은행들에게 적용되고, 예치금액과 무관하다. 더구나 실질금리가 아니라 명목금리가 마이너스다. 은행들에게 “더 이상 돈을 맡기지 마라”는 지침을 준 것이다. 벌금을 내면서까지 중앙은행에 굳이 돈을 넣어둬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ECB가 이런 고육책을 꺼내든 것은 금융위기 이후 더 이상 내놓을 경기부양책이 마땅치 않기 때문. 현재 각국 정부는 양적완화 정책 등을 통해 은행에 자금을 불어넣고 있지만 정작 이 돈은 기업과 가계 등의 투자로 이어지지 않고, 다시 중앙은행으로 예치되는 구조로 변질돼 있다. 실제 단기 예금금리가 0%인데도 은행들은 지급준비금 외에도 1,000억유로 가량을 ECB에 예치해 놓았을 정도다. 자칫 투자를 잘못해 손실을 보느니, 이자를 전혀 못 받아도 돈을 맡겨두는 게 속이 편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ECB의 기대처럼 시중은행이 ECB에 돈을 맡기는 대신 시중에 돈을 풀어 경기 부양 효과를 낼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예금금리가 마이너스가 되면 보수 성향을 가진 은행들은 더욱 움츠러들 수도 있다. 실제 2012년 ECB가 마이너스 금리 도입을 검토한다는 소문에도 은행들은 초단기예금을 ECB의 당좌계좌로 옮겨 평소보다 당좌계좌 금액이 5배나 급증하기도 했다. 당좌계좌는 이자가 없는 대신 필요할 때 자금을 쉽게 빼낼 수 있어, 초단기예금 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질 경우 이 계좌를 이용하는 게 유리하다. 김위대 국제금융센터 부장은 “은행들이 자금을 다른 계좌로 옮기는 정도의 효과만 가져올 뿐 마이너스 금리가 ECB 기대처럼 투자촉진으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관규기자 a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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