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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을 기다리고도 결국 못 찾은 나의 '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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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을 기다리고도 결국 못 찾은 나의 '고도'

입력
2014.06.06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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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기다리며> 사뮈엘 베케트 지음ㆍ오증자 옮김, 민음사 발행ㆍ175쪽ㆍ7,000원
<고도를 기다리며> 사뮈엘 베케트 지음ㆍ오증자 옮김, 민음사 발행ㆍ175쪽ㆍ7,000원

정확히 얘기하자면 다시 읽고 싶은 책이면서 다시 보고 싶은 연극이다. 사뮈엘 베케트의 대표작인 <고도를 기다리며>는 1969년 그에게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 평생의 대표작(희곡)이지만, 이 작품을 오직 ‘글’만으로 읽겠다는 동기를 지니기는 쉽지 않다. 부조리 희곡의 효시인 만큼 무대에서 살아 숨 쉬는 배우들과 대사로 작품을 먼저 접했던 경험 없이 이 책을 읽어나가기란 여간 난해한 일이 아니다. 나 또한 <고도를 기다리며>를 수 차례에 걸쳐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로 미리 감상하고 나서야 읽겠다는 결심을 굳힐 수 있었다.

시공의 경계가 무너진 듯, 같은 장소와 동일한 시간에 선 채 오지 않을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그 ‘부재(不在)의 존재감’에 의지하며 생을 버티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의 말장난 속에서 일상을 겨우 살아내는 우리의 자화상을 본다. 허무하며 의미 없는 이들의 말은 “시골 길,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는 첫 장의 배경 묘사만큼이나 단순하면서 의미가 없지만 거꾸로 보면 그 어떤 지문보다 풍부한 독자 혹은 관객의 상상력을 허용하는 마술 같은 힘을 지녔다.

2000년 출간된 민음사의 <고도를 기다리며>는 프랑스어 원작을 곧바로 한국어로 옮긴 첫 번역본으로 전 서울여대 불문과 교수인 오증자씨의 솜씨다. 오씨는 다름 아닌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를 국내 초연한 후 40여 년 무대에 계속 올려온 극단 ‘산울림’의 대표 연출가 임영웅씨의 아내이기도 하다. 책과 연극은 이렇게 끈끈하게 묶여있다. 책 <고도를 기다리며>의 감상과 기억이 자연스럽게 무대와 닿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

내가 기억하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각기 다른 세 단체의 공연들이다. 1990년대 대학 시절 혜화동 대학로의 어느 지하 공연장에서 만난 ‘고도’가 첫 기억이다. 어린 나이에 베케트의 부조리한 문장들은 헛소리의 연속으로 들렸다. 배우들은 연신 구두(1막에서 주인공들이 사용하는 거의 유일한 소품이다)를 들었다 놨다 하면서 잡담을 이어갔고, 누군지도 모를 고도를 기다리는 모양새가 짜증을 불러일으켰다. 1막이 끝나자마자 극장을 나왔다. 그 놈의 고도는 오거나 말거나. 이후 오래도록,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한 인상은 구두와 고도라는 유형과 무형의 이미지로 머리에 남아있었다.

두 번째 ‘고도’는 번역자 오증자씨의 남편인 임영웅 연출의 작품이었다. 국제적으로 가장 베케트의 원작에 가깝게 무대를 구현했다는 평을 받아온 그의 연극은 글만으로 동감하기 어려운, 고도를 향한 기다림을 명징하게 드러냈다. 23㎡(7평) 정도에 불과한 작은 무대에서 베케트의 문장들은 기다림을 포기하지 않으며, 살아 있음을 실감하기 위해 말하고 욕하고 운동하고 장난하는 배우들의 입과 몸으로 정밀하게 살아났다. 구원을 갈망하는 관객에게 신이 되기도 하며, 혹은 애인이 되기도 하는 고도가 여전히 정체를 드러내지 않음은 물론이다. 고도가 오건 오지 않건, 변함없이 바지를 올리고 혹시나 목을 맬지 몰라 넥타이를 준비하는 주인공들의 퇴장(베케트의 원작이나 연극에서 공히 이들은 무대를 벗어나지 않는다)은 허무하면서 유쾌하게 구현된다. 베케트의 연극을 부조리 연극이라 처음 명명한 마틴 에슬린이 베케트를 ‘유쾌한 허무주의자’라 일컬었던 표현은 정확했다.

세 번째로 ‘고도’를 기다린 곳은 지난해 가을 대학로 게릴라소극장이었다. 공교롭게도 임영웅 연출의 정통 ‘고도’가 산울림 극장에서 공연 중이던 이 때, 뇌성마비로 몸을 움직이고 발음하는 게 쉽지 않은 장애인 배우들이 난해하기 짝이 없는 ‘고도’를 공연한 것이다. 좁은 극장이 넓게 느껴질 정도로 비어버린 객석은 예상했던 바이다. 늦가을 모기들이, 그나마 객석을 지킨 관객을 괴롭혔다. 모기들의 날갯짓 소리가 배우 목소리를 간혹 덮을 정도로 크게 들렸다. 하지만 이들이 전하는 기다림의 진정성은 일반 배우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고도를 기다리며 보여주는 두 필부의 불안정성, 실재와 허구의 장막을 거둬버린 연기는 장애인 배우들에 의해 더욱 잘 살아났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세 번에 걸쳐 ‘고도’를 기다리고서야 <고도를 기다리며>를 펼쳤다. 내가 기다리는 고도는 무엇인지, 혹시 바른 장소와 바른 시간을 벗어났기에 영영 만날 수 없는 고도를 하릴없이 기다리는지 답을 찾고 싶어서다. 그리고 다시 펼친 지금, 여전히 나의 고도를 알 수 없다. 베케트도 그랬다. “내가 그것(고도)을 알았다면 작품 속에 썼을 것”이라 말한 게 그의 진심임을 이제 알 것 같다.

양홍주기자 yang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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