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의 로봇 연구개발 프로젝트를 수행한 프론티어 지능로봇사업단이 10년의 활동을 마치고 핵심 기술들을 공개했다. 로봇 연구개발 프로젝트에는 민간과 정부가 약 1,000억원을 투입했다. 사업단은 웹사이트 ‘로보토리움(www.robotorium.re.kr)’을 만들어 2003년부터 2013년까지 지난 10년 동안 개발한 로봇과 핵심 기술들을 소개했다. 사업단이 개발한 로봇은 세계 곳곳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하지만 연구실 밖으로 나와야 할 기술은 아직 많다.
지능 로봇 키보·시로스
동작 정교·감정표현 가능해도 조정 복잡하고 대당 수억원대
상용화에 최대 20년 더 걸려
한국의 로봇 가운데 대중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로봇은 ‘키보’다. 사람을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으로 두 발로 걷고 사람과 간단히 대화할 수도 있다. 얼굴 표정을 다양하게 바꿔 감성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은 동작 구현 위주의 해외 휴머노이드와 구별되는 특징이다. 키보와 함께 기술의 진보를 보여주는 사업단의 또 다른 로봇으로 ‘시로스’를 들 수 있다. 주방 도우미 개념으로 만든 시로스 기술의 진수는 두 팔에 있다. 칼로 오이를 자르고 샐러드를 만드는 등 부엌일을 정교한 동작으로 해낸다.
키보와 시로스는 그러나 상용화와는 거리가 있다. 대당 수억 원에 달하는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구성과 조작 방식이 너무 복잡해 전문가가 아니면 다루기 어렵다. 아직은 전문가들이 연구를 하기 위한 플랫폼 개념의 로봇이다. 두 로봇의 상용화에는 10~20년은 더 걸릴 것으로 사업단은 보고 있다.
실벗·메로는 사업성 인정
치매 예방 등 교육 목적 수출
서비스 분야 시장 블루오션
이와 달리 ‘실벗’과 ‘메로’ 시리즈는 상용화를 목표로 만들어졌다. 높이가 각각 115㎝와 60㎝인 두 로봇은 음성 대화, 물체와 얼굴 인식, 실내 주행 등 30가지 이상의 기술을 갖고 있어 노인 인지 훈련, 학생 영어 교육, 특수아동 교육 등에 최적화한 로봇이다. 대당 2,200만~2,500만원 선이다.
실벗과 메로는 움직임을 구현하는 기술도 세계 수준이다. 바퀴 달린 일반 로봇은 앞뒤 두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보통이지만 실벗과 메로는 목과 팔, 몸체가 각각 여러 방향으로 움직인다. 특정한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능력을 자유도라고 하는데 실벗과 메로는 총 자유도가 11 이상이다. 가령 양팔은 각각 3가지, 몸체는 3가지, 목은 2가지 방향으로 움직이는 식이다. 김문상 지능로봇사업단장은 “로봇이 사람과 비슷한 표현력을 보이려면 자유도가 적어도 11은 돼야 한다”며 “공연용이나 장난감을 제외한 상용화 로봇 중 이 정도 자유도를 갖춘 로봇은 세계적으로 드물다”고 소개했다.
실벗과 메로의 기술력과 상업적 가능성은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 최근 덴마크는 두 로봇을 치매 예방훈련에 활용키로 했다. 사업단은 덴마크와 합작회사를 설립, 유럽 시장 진출의 계기로 삼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러시아는 자국 대학의 로봇 관련 학과에 교육과 연구용으로 실벗과 메로를 보급하기로 했고 인도는 시골 초등학교의 원격 영어 교육에 활용하기로 했다.
로봇 기술의 흐름은 지난 10년 동안 크게 변했다. 초기 로봇 기술은 주로 산업 현장에서 일손을 줄이거나 위험을 덜어주는 식으로 개발됐다. 그러나 현재 이런 로봇 시장은 포화상태에 있다. 웬만한 공장에는 로봇이 들어가 대부분의 공정을 자동화했다. 기술 수준을 계속 향상시키거나 개량할 필요는 있겠지만 향후 산업 현장에서 로봇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
군사나 우주, 의료 등 특수 목적을 제외하면 향후 로봇 산업은 서비스 위주로 성장할 것으로 점쳐진다. 사업단은 특히 복지와 교육 서비스가 중심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유럽이 로봇에 주목하는 이유 또한 복지 때문이다. 노인 부양을 로봇이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단장은 “복지 선진국은 노인 가정에 서비스 로봇을 제공해주면 요양원으로 가는 시기를 늦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나 자폐증 등을 앓고 있는 아이를 위한 특수교육에도 로봇이 필요하다. 교사의 말을 잘 안 듣거나 반응을 보이지 않는 아이들도 로봇에는 관심을 보이기 때문이다. 사업단이 덴마크, 러시아 등에 실벗과 메로를 수출할 수 있었던 데는 이 같은 시장 흐름이 반영돼 있다.
서비스 로봇 시장은 여전히 블루오션이다. 김 단장은 “미국, 일본, 한국이 경쟁하고 있다”며 “서비스 로봇 기술 개발을 비교적 빨리 시작한 한국이 (시장 선점에서) 유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사업단이 웹사이트 로보토리움을 통해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SDK)를 제공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껏 로봇 연구자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기술 개발에 시간과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또 로봇이 전문 영역이라 일반인이나 기업이 쉽게 활용할 엄두를 못 냈다. 이런 상황들이 서비스 로봇 상용화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김 단장은 “SDK는 사용자가 원하는 기능의 프로그램을 직접 개발해 실벗이나 메로 시스템에 적용할 수 있게 만든 키트”라며 “지능로봇의 전체 시스템을 이해하지 않고도 개인의 고유 기술을 개발할 수 있도록 돕는 공용 로봇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로봇기업 윌로우가라지가 얼마 전 유사한 개념의 공용 플랫폼을 내놓아 주목 받았지만 가격이 너무 비싼데다 과학자용 위주여서 상업화에는 실패했다. 사업단의 이번 시도가 첨단과학 성과를 사회에 확산시키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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