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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꿰고 있는데 민간 잠수사 왜 막는지..."

입력
2014.06.06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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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신 인양했던 조정현씨 한숨

세월호 침몰 참사 나흘째인 4월19일 새벽. 수색에 나선 잠수사들이 세월호 유리창 안쪽에서 시신을 발견했다. 유리창을 망치로 두들겼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바지선 위에서 이 소식을 들은 한국해양구조협회 소속 잠수사 조정현(36)씨는 바지선에 있던 네모난 금속 한쪽을 날카롭게 갈아 쇠막대에 용접했다. 10분만에 만든 손도끼를 든 채 조씨는 동료 안길필(42)씨와 물에 뛰어들어 유리창을 깨고 시신 세 구를 수습했다. 참사 후 선체 내 첫 시신 인양이었다.

조씨를 4일 진도 팽목항 선착장 인근에서 만났다. 건장한 체격에 주황색 점퍼를 입은 그가 뗀 첫 마디는 “다시 바다에 들어가고 싶다”였다. 해경과 해군보다 먼저 수색에 뛰어들어 바지선과 세월호를 잇는 가이드라인을 처음으로 설치했고, 한 달간 수중 수색작업을 벌여 시신 30여구를 수습한 베테랑 잠수사가 왜 바다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을까.

많을 때는 하루 세 번까지 바다에 뛰어들었던 조씨는 5월16일 수색작업 후 어지럼증을 느껴 해군 함정의 고압 체임버에서 6시간 잠수병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다음날 손발 마비 증상까지 나타나 헬기로 경남 사천의 한 병원에 후송됐다. 잠수사인 아버지를 따라 고등학교 때 처음 잠수를 배운 이후 20년 가까이 잠수 일을 해온 그도 처음 경험한 잠수병이었다.

지난달 26일 9일만에 퇴원한 그는 다시 팽목항으로 돌아왔다. 가족들은 말렸지만 다시 실종자를 찾아야 한다는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해양구조협회 회원으로 구조활동을 시작했으니 끝까지 해야죠. 제가 첫날부터 봐온 실종자 가족들이 너무나 지쳐있어요.”

그러나 그는 아직 바지선에 오르지도 못했다. 새로 수색작업에 들어온 88수중개발이나 언딘에서 민간잠수사를 더는 받지 않기로 했기 때문이다. 황대식 해양구조협회 본부장은 “두 업체들이 직접 계약한 잠수사가 아니면 받지 않기로 했다고 들었다. 우리 협회 회원처럼 자원봉사자는 들어갈 수 없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조씨는 10일 가까이 먼 바다만 바라보며 한숨을 쉬고 있다. 조씨는 “초기부터 들어갔던 사람들은 세월호 내부 구조를 꿰고 있는데다 촉감으로도 뭐가 있는지 다 알기 때문에 돌아가신 잠수사들처럼 사고 날 일은 없을 것”이라며 말을 흐렸다.

그는 요즘 세월호 수색하는 꿈 때문에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고 말했다. 특히 단원고 학생들의 시신을 수습하던 때가 꿈에 자주 나온다고 했다. “어딘가에 걸려서 잘 나오지 않는 친구들이 있어요. 그런데 ‘아저씨가 엄마 아빠한테 데려다 줄게. 어서 가자’라고 하면 신기하게도 나와요. 우리끼린 ‘달랜다’고 하죠. 그렇게 어떤 잠수사는 무거운 자판기에 깔려 있던 친구를 데리고 나왔어요.” 눈물이 고인 조씨의 눈이 다시 바다로 향했다.

진도=박소영기자 sosyo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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