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민 미술작가
“우리 대법 선고기일 잡혔어. 6월 12일 10시 정리해고건, 14시 징계해고(3인) 선고.”
이른 아침 암호 같은 단어들로 이뤄진 한 통의 문자가 잠을 깨운다. 지난 4월에 ‘서울 데카당스-Live’라는 공연을 함께 만든 콜트콜텍 노동자 세 분은 현재 대법원 앞에서 무기한으로 24시간 1인시위 중이다. 소식을 듣고 처음 방문한 현장에는 30도를 웃도는 이상기온으로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 을 막기 위해 카메라 삼각대에 우산을 덧대어 만든 가리개가 놓여 있었다. 그 민첩하면서도 쓸모있게 만든 모양새에 동료들과 웃음을 터트렸지만 뒷맛은 씁쓸했다. 그리고 며칠 뒤에는 언제 더웠냐는 듯 속절없이 비가 내렸다. 우산 가리개 대신 장대비를 피하기 위한 비닐 천막이 설치됐다. 빗소리를 들으며 비좁게 앉으니 꽤 아늑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실 농성장에서 필요에 의해 급하게 만들어진 물건들을 보면 어지간한 설치작품 보다 그럴듯한 경우가 많다. 그 날도 철거를 경고하는 경찰과 구청의 연락이 분주하게 오갔다. 김경봉 이인근 임재춘. 길 위의 농성장 생활이 어느덧 7년을 넘어선 그들이라 해도 작은 천막조차 허락되지 않는 도로변은 위태로워 보이기만 한다.
예술한다는 사람들이 콜트콜텍의 해고 노동자들에게 왜 그렇게 관심이 많을까? 혹자는 궁금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화평론가인 서동진 선생은 한 시각예술저널에서 “현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가 사회적 전환(social turn)이다. ‘사회’ 또는 ‘사회적’이라는 개념은 현대미술에서 어디를 가나 따라다니는 주요한 범주, 일종의 미학적 규범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기엔 의미심장한 대구를 이루는 것 같다. 왜냐하면 신자유주의 교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사회의 소멸이라는 사실을 오늘날 사회과학자들이나 철학자들이 한결같이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현대미술이 사회적 생산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는 것은 더욱 적극적으로 진화하는 자본중심의 사회 없는 사회에서는 예술도 존재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분석을 떠나 내가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 분들을 알고 만나기까지 그들이 보여준 태도와 문화연대를 비롯, 여러 단체와 개인, 많은 예술인들이 함께 이어가고 있는 활동은 단순히 부당해고와 복직의 문제를 넘어서는 또 다른 가치와 미감(美感)을 일깨우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 기나긴 과정의 한 켠에는 법정 투쟁도 있었다. 콜텍의 대전공장은 본사와 따로 운영됐기 때문에 별도로 따져봐야 한다는 사측의 주장에 대해 2009년 11월 서울고등법원은 가장 상식에 가까운 판결을 냈다. ‘대전공장만 아니라 콜텍 전체 상황을 봐야 한다’며 ‘38명을 정리해고해야 할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가 없다’는 판결이었다. 그러나 이후 대법원은 새로운 쟁점을 내세워 ‘장래의 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한 인원 감축도 정당할 수 있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콜텍과 대전공장이 하나의 회사임은 인정하지만, ‘대전공장의 정리해고는 장래에 올 수도 있는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사업부 정리이므로 정당하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사건번호 2014다 12843’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이다. 그리고 해고자들에게 뜻밖의 절망을 준 재판부 주심 중 한 명이 ‘전관예우와 관피아’라는 말을 널리 알린 안대희 전 대법관이었다. 올지 어떨지 모를 미래의 위기 때문에 예고도 없이 정리해고를 하는 것이 정당하다면 차후에 기업들이 어떤 논리로 사람들을 소비하고 물화시키고 대체할지 등골이 오싹해진다.
사실 나는 부당 해고된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이자 콜밴(콜트콜텍 기타 노동자 밴드)의 연주자이자 햄릿을 연기한 연극배우이자 함께 작업한 퍼포머이기도 했던 이 분들을 재판 결과와 무관하게 승자라 여긴다. 한편으론 자유 평등 정의를 건물 앞에 크게 새긴 대법원이 차후에 지난 판결을 부끄러워하리라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6월 12일에 있을 마지막 선고 결과를 함께 지켜보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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