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홍주 경제부 차장대우 yanghong@hk.co.kr
세월호 참사 후, 우리 사회는 ‘해답’ 찾기에 분주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후 멸종했다고 믿었던 대형참사라는 이름의 괴물이 다시 살아나 활개를 치는 모습에 지식인 사회는 바쁘게 그 원인을 찾아다녔다. 한국일보도 ‘세월호를 잊지 말자’라는 제하의 시리즈 기사를 준비하면서 과연 지식인들이 생각하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조금은 냉정하게 물었다. 이에 지난 5월 12일부터 8회에 걸쳐 인문학자와 작가들로부터 장문의 글을 받아 ‘전 근대사회의 망령’이라 부를만한, 참사의 근원을 따져봤다.
신문 등 매스컴들이 내놓은 진단들은 어쩌면 눈에 보이는 근인(近因)들을 언급하는 데 불과했을지 모른다. “안전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다”거나 “경직된 관료사회가 재난대응의 발목을 잡았다”와 같은 분석들로 일원화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기고로 받아본 학자들의 대답은 이와 달랐다. 이들은 세월호의 침몰, 그리고 이후 드러난 우리 사회의 흉측하기 짝이 없는 상처들이 다름 아닌 ‘비뚤어진 근대화’의 칼날에 의해 생긴 것들이라고 입을 모았다. 잘못된 길을 걸어온 근대화 과정으로 인해 인간의 존엄이 땅에 떨어졌기 때문에 참사가 빚어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가운데 독일 카셀 대학에서 사회학을 가르치고 있는 김덕영 교수는 “단순히 공무원의 복지부동, 선원들의 무책임성, 자본의 탐욕만으로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며 “한국사회의 근대화 과정 전반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통해 이해해야 하는 복합적인 현상이다”고 진단했다. 그는 전분야에서, 그리고 오래도록 뜸을 들여가며 완성했어야 할 근대화가 우리 사회에선 경제 성장에 집착해 진행됐고 그래서 세계 경제규모 10대 강국이 21세기에도 전근대적인 참사를 겪게 됐다는 해석을 내놨다. 농로를 포장하고 수출 1억 달러(1974년)를 달성하는 것만이 근대화의 전부라며 복지, 정치, 노동 등 여러 분야의 근대화를 소홀히 한 탓에 현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머릿속에는 알게 모르게 ‘오직 성장’이라는 치우친 이데올로기가 자리했고 인간 자체에 대한 존귀함은 뒷전으로 물러났다는 것이다.
비뚤어진 근대화의 결과물을 비단 세월호 사고와 같은 거대한 참상을 통해서만 엿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근대화의 태중에서 나온 자식들은 사실 곳곳에 둥지를 틀고 있다. 주거 공간이라는 속성은 거의 무시된 채 오직 재테크 수단이란 정체성을 앞세워 하우스푸어를 양산하며 서식지를 넓혀간 아파트는 인간보다 성장을 중요시한 근대화가 낳은 또 다른 자식이 아닐까. 김덕영 교수는 책 환원근대에서 인구밀도가 높지만 아파트가 많지 않은 네덜란드의 예를 들며 ‘아파트 공화국’ 한국의 현실이 잘못된 근대화의 유산임을 지적했다.
경제적 가치로 모든 가치를 가리는, 비뚤어진 근대화의 하이라이트는 이른바 ‘공장사회’를 지탱하는 공교육이다. 고속 성장을 근대화의 전부로 인식한 기성 세대와 과거 정권 탓에 우리 아이들은 인성 교육에서 멀어져 특목고와 사교육의 현장에서 화석연료처럼 불타고 있는지 모른다. 김두식 경북대 로스쿨 교수는 “아이들이 재능과 열정을 너무 일찍 소진해버리는 ‘번 아웃(burn out)’에 내몰리고 있다”며 “이로 인해 오히려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안타까워했다. 잘 팔리는 문화 상품을 만들기 위한 원자재로 청소년을 다루는 K팝 업계, 몸뚱이를 불리는 데 혈안인 일부 종교단체 등 ‘탈(脫) 빈곤’을 핑계로 한 비뚤어진 근대화는 여전히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어섰지만 “행복하다”고 쉽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 돈보다 앞서는 가치들을 포기한 비뚤어진 근대화 때문에 불행한 이들에게 30여 년 전 미국의 경제학자 티보르 스키토프스키는 “항상 많은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배가 침몰해도 발 빠르게 사람을 구하지 않는 비정함, 지나친 사교육에 젊음이 소진되어 버린 아이들. 2014년 한국이 짊어지고 있는 수많은 문제는 사실 물질적인 무언가가 부족해서 빚어진 것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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