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경찰 수사를 축소·은폐해 불법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기소된 김용판(56)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5일 항소심에서 원심처럼 무죄를 선고받았다.
작년 3∼5월께 이 사건 관련 증거를 수차례 삭제한 혐의로 기소된 박모(36) 전 서울청 디지털 증거분석팀장(경감)은 이날 공교롭게도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서울고법 형사2부(김용빈 부장판사)는 이날 공직선거법·경찰공무원법 위반 혐의와 형법상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 전 청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경찰의 중간 수사결과 발표가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할 수 있었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라면서도 "피고인의 행위를 선거운동으로 볼 수 없다"며 이같이 판결했다.
재판부는 "선거법상 선거운동의 의미는 죄형 법정주의에 반하지 않도록 해석해야 한다"며 "선거운동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선거에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행위자의 목적성, 계획성, 능동성이 모두 인정돼야 한다"고 부연했다.
재판부는 또 "이 사건 디지털 증거분석결과 보고서, 보도자료, 언론 브리핑 등의 내용이 허위라고 볼 수 없고, 김 전 청장이 수사 결과를 은폐·축소하라고 지시한 사실도 인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2012년 12월 당시에는 국정원의 선거 관여가 명백히 확인되기 전이었다"며 "이후 수사가 확대된 뒤 발견된 자료를 기준으로 기존 수사가 축소된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권은희 전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증언은 다른 수서서 경찰관들의 증언과도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 모두 믿을 수 없다"며 "그 증언이 사실이라고 해도 피고인의 유죄를 직접 인정할 만한 내용이 없다"고 덧붙였다.
김 전 청장은 이날 판결 선고 직후 "오늘 판결을 계기로 경찰이 국민 속으로 더 따듯하게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며 "공정한 판결을 한 재판부에 감사드린다"고 소회를 밝혔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검찰이 공소유지에 필요한 적절한 직무를 게을리했고, 법원은 결론을 미리 내려놓고 모든 이유를 짜맞춰 담합했다"며 비판했다.
한편, 서울중앙지법 형사11단독 우인성 판사는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된 박 전 서울청 디지털 증거분석팀장에게 이날 징역 9월을 선고했다.
작년 2월 새로 디지털 증거분석팀장을 맡은 박 경감은 업무용 컴퓨터에 저장돼 있던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 관련 문건 수십 건을 일괄 삭제해 김용판 전 청장의 수사 축소·은폐 증거를 인멸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우 판사는 "증거인멸은 그 대상이 된 범죄 사실의 실체를 미궁에 빠지게 해서 그 실체가 유죄임에도 무죄의 의혹을, 무죄임에도 유죄의 의혹을 남게 하는 결과를 가져와 사법권의 적정한 행사를 침해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피고인의 지위와 직책을 고려할 때 각종 문건을 삭제한 행위의 의미를 피고인 스스로 충분히 인식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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