對中 철강교역 누적적자
8년간 296억달러
저가 철강재 수입 증가 속
국내 안전규격 미달 많아
건물 안전마저 위협
국내 업체들 생존 위해
출혈경쟁까지 벌여
중국산 저가 철강재 범람으로 국내 철강업체는 물론 건설업계에도 비상이 걸렸다.
건물 골조용도로 주로 사용되는 H형강의 경우 지난해 수입물량은 92만5,000톤으로 전년 대비 32% 증가했는데, 이중 91%가 중국산이었다. 또 콘크리트 보강용도로 사용되는 철근의 경우, 지난해 총 수입량 46만7,000톤 중 64%가 중국에서 들여온 제품이었다. 이로 인한 무역적자도 급증해 대 중국 철강교역의 경우 2005년 적자로 돌아선 후, 2012년까지 8년간 296억달러(적자량 4,500만톤)의 누적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늘어나는 무역적자도 문제지만, 수입산 중국 철강재 중에는 국내 안전규격에 미달하는 저질 철강재가 많아 건물 안전에 위협이 된다는 점이 더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지금까지 국내 수입된 중국 철강재들 중에는 제품의 무게를 표시중량보다 과도하게 줄이거나 불순물이 포함된 철강재가 많다고 지적한다. 국내 건설업체들은 중국산 철강재의 품질이 떨어지는 걸 알면서도 건축주가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과 건축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유혹 때문에 저질 중국산 철강재를 사용하는 실정이다.
중국산 저가 철강재가 범람하자 국내 철강업체들도 출혈경쟁에 돌입했다. 올 1월 톤 당 66만원 수준이던 중국산 H형강 가격은 지난달 61만원까지 떨어졌는데, 이는 톤당 80만원 수준인 국산 H형강에 비해 약 20만원이 싸다. 결국 국내 업체들은 손실을 무릅쓰고 가격을 낮춘 이른바 ‘수입대응재’를 내놓고 있다. 현대제철과 동국제강 등은 톤 당 73만원이던 철강재 값을 지난달 63만원으로 낮추는 초강수를 뒀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KS인증을 받지 않은 철강재를 사용하는 것이 건설현장에서 적발될 경우, 건설업체는 물론 수입업체와 국내 유통업체에게도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하는 개정 건설기술진흥법을 지난달 말부터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내 건설경기가 차갑게 식으며 공급과잉 현상이 심화된 탓에, 중국의 저가수출 공세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중국 정부까지 세제혜택 등 각종 지원책을 내놓으며 수출을 독려하고 있다. 중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중국의 철강재 수출물량은 전년 대비 12% 증가한 약 7,000만톤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국내 철강사들의 총 생산량과 비슷한 규모다.
견디다 못한 한국철강협회는 중국 당국과 협의를 통해 수출자제를 요청하고 있고, 심지어 일부 업체들은 중국산 제품에 대한 반덤핑제소까지 검토하고 있다.
상황이 개선될 가능성도 있다. 중국 정부가 철강생산을 2018년까지 8,000만톤 이상의 감산 계획을 밝히면서 본격적인 구조조정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중국 철강업 구조조정이 오히려 장기적으로 국내 철강업체에 더 큰 위협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구조조정의 목표가 국내 업체들이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고부가가치 제품으로의 전환에 무게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세탁기, 냉장고 등 가전제품과 자동차 강판으로 쓰이는 냉연강판의 경우, 올 1~4월 중국산 수입량은 전년 동기 대비 28% 증가한 28만5,000톤을 기록했다.
중국 철강업체들의 거센 도전에 맞서기 위해서는 업체의 기술 개선 노력뿐 아니라 정부의 지원도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을 비롯 많은 국가들이 자국 철강 시장보호를 위해 수입을 규제하는 세이프가드제도나 반덤핑관세 등 무역구제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통상마찰을 우려해 소극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있다”며 “업체들도 품질개선 및 마케팅 강화 등 자구노력을 하는 만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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