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비슷한 과정 박재홍 SK 이적 후에 제 2의 전성기
김응용 감독, 주전 포수 시사
지난 2004년 12월12일 KIA와 SK는 다소 의외의 맞트레이드를 단행했다. KIA 박재홍과 SK 김희걸을 맞교환한 것으로 누가 봐도 KIA가 손해 보는 장사였다.
대표적인 불균형 트레이드로 꼽히는 이 ‘거래’는 박재홍의 강력한 요청으로 시작됐다. 자유계약선수(FA) 자격 취득을 놓고 구단과 갈등을 빚던 박재홍은 구단에 트레이드를 요구했고, KIA는 애써 무마하려 했지만 결국 박재홍을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10년이 지난 뒤 이번엔 SK가 비슷한 경우를 겪었다. 조인성은 지난 4월 구단에 조심스럽게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정상호와 이재원에 밀려 설 자리를 잃은 조인성은 “경기에 더 많이 출전할 수 있는 팀으로 옮기고 싶다”는 뜻을 보였고, SK 역시 10년 전 KIA처럼 선수와 갈등 양상으로 외부에 비쳐지는 것을 피하려 처음엔 부인했지만 지난 3일 전격적으로 트레이드를 성사시켰다. 한화에서 이대수와 김강석을 받는 2대1 트레이드지만 역시 무게 중심은 조인성에 쏠리는 것이 사실이다.
박재홍은 트레이드 이후 야구 인생의 대반전을 이뤘다. 원래 국가대표 부동의 중심타자였지만 당시 소속팀 KIA에서는 부상 여파와 정신적인 고통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SK로 이적한 직후 2005년에는 3할 타율(0.304)로 부활했고, 2007년과 2008년엔 우승에 앞장섰다. 프로야구 최초 250홈런-250도루도 달성했다. 여러 가지 마음의 짐을 덜고 야구에만 집중한 덕에 이뤄낸 성과물이다.
세 번째 유니폼을 갈아 입은 조인성 역시 야구에 전념할 수 있는 계기는 마련됐다. 지난해부터 트레이드를 염두에 뒀다는 김응용 한화 감독은 조만간 조인성을 주전 포수로 중용할 방침이어서 SK에서 못 다 펼친 야구를 원 없이 할 수 있다. 조인성은 LG 시절이던 2010년 3할1푼7리에 28홈런, 107타점을 거둔 뒤 주가가 치솟았다. 올해 우리 나이로 불혹이 됐지만 타격에 뒤늦게 눈을 떴고, 야수보다 선수 생명이 긴 포수를 맡고 있어 한화에서의 새 인생은 희망적이다. 조인성은 “SK 구단과 팬들에게 별 도움을 못 드리고 떠난 것 같아 죄송하다”면서 “경기에 더 많이 출전하고 싶었다. 신인의 자세로 새 팀에서 열심히 뛰겠다”고 다짐했다.
성환희기자 hhsu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