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의 완충구역인, 그래서 전쟁의 긴장이 동결돼 있는 비무장지대(DMZ)는 역설적이게도 한반도에서 생명의 기운이 가장 활발한 곳이다. 지난 61년 동안 이곳은 민간인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 공간이었다. 덕분에 파괴적 개발로부터 격리된 남한의 마지막 자연 생태를 만날 수 있다. 환갑을 맞은 DMZ는 조금씩 그 품을 열어 왔고 현역 군인이 아니면 접하기 힘들었던 한반도의 진면목도 점점 여행의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한 ‘이달의 가볼 만한 곳’의 주제는 ‘생태계 보고 민통선 지역 즐기기’다.
숨겨진 습지에 사는 희귀 동식물, 화천
강원 화천군의 6월은 고요하고 신비한 녹음의 세상이다. 세인의 발길이 닿지 않은 땅에 숲과 물이 뒤엉켜 생명의 향연을 만들어낸다. 화천 양의대 습지는 민간인통제구역(민통선) 생태계의 숨은 보고다. 평화의 댐에서 북한강 따라 민통선을 거슬러 오르면 상류에 드넓은 습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군용 다리인 안동철교에서 오작교까지 이어지는 12㎞ 습지대는 반세기 넘게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아 새벽마다 몽환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6월엔 중부 이북 고산습지에서 자라는 금마타리가 습지를 진녹색으로 물들인다. 수달, 사향노루, 산양 등 천연기념물과 희귀 식물도 이곳에 터를 잡고 산다. 물을 마시러 개울로 나온 동물들의 모습이 낯선 세계에 들어선 듯 감동을 안겨 준다.
양의대 습지 하류에는 세계 평화의 종, 비목공원 등이 조성된 평화의 댐이 있다. 북녘 땅을 가깝게 조망할 수 있는 칠성전망대는 화천 민통선 여행의 다른 축을 이룬다. 생태 투어를 테마로 잡았다면 ‘숲으로 다리’길과 수달연구센터를 둘러보며 여행을 마무리하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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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의 이야기가 깃든 한탄강 비경, 철원
민통선 10경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강원 철원군 고석정은 의적 임꺽정의 활동 무대였다. 임꺽정은 한탄강 일대에 은신하면서 탐관오리를 응징하고, 고관대작의 재물을 훔쳐 백성에게 나눠줬다고 전한다. 이곳에 어린 그의 흔적은 눅진해서 이 어름엔 임꺽정이 꺽지로 변신해 물속을 누볐다는 전설까지 남아 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기 전 꽤 큰 도시였던 철원은 민통선 관광의 메카다. 궁예의 성터와 얼음창고, 농산물검사소 등 일제강점기 번성했던 흔적을 보여주는 근대 건축물들이 남아 있다. 고석정은 한탄강 최고의 명소이자 철의 삼각 전적지 안보 견학의 출발점이다. 문화해설사와 동행하여 민통선 안으로 들어가 철원평화전망대와 철원두루미관, 월정리역 등을 둘러볼 수 있다. 60여년 만에 개방된 소이산 생태숲 녹색길도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래프팅을 즐기는 사람도 많다. 한탄강 물길이 빚은 송대소, 직탕폭포, 순담계곡 등도 아름답다. 강줄기를 따라 동쪽으로는 걷기 좋은 한탄강 생태순환탐방로가, 서쪽으로는 자전거를 타고 즐기는 한여울길이 조성돼 있다.
http://tour.cwg.go.kr (033)450-5255
초여름 녹음과 햇살 사이 비밀의 계곡, 양구
짙은 녹음 사이로 싱그러운 햇살이 쏟아지는 초여름의 숲을 걷는 일은 그 자체로 훌륭한 생태 학습이자 최고의 힐링 여행이다. 강원 양구군에 있는 두타연은 반세기 넘게 금단의 땅이었다가 2004년 일부 구간이 개방됐다. 오랫동안 사람 손 타지 않은 독특한 생태계가 남아 있는 청정 지역이다.
금강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양구의 깊은 골짜기를 흐르다가 굽은 한 부분이 절단되면서 만들어진 두타연은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와 푸르다 못해 검은빛을 띠는 소, 그 주위를 병풍처럼 둘러싼 기암이 어우러져 천혜의 비경을 선사한다. 출렁다리를 건너 바위 안쪽의 보덕굴까지 들어갈 수 있다. 두타연 부근에 조성된 12㎞ 길이의 평화누리길은 트레킹과 자전거 여행에 안성맞춤이다.
열목어, 고라니, 산양, 금낭화, 큰꽃으아리, 올괴불나무 등 희귀 동식물을 여기서 만날 수 있다. 1박 2일 일정이라면 양구생태식물원, 양구산양증식복원센터, 광치계곡, 박수근미술관, 국토정중앙천문대, 펀치볼까지 돌아보는 생태 문화 코스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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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풍경 속, 연천
경기 연천군의 민통선은 자연 생태 탐방과 안보 관광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최적지다. 임진강과 한탄강이 합류하는 부근에 내륙에서 볼 수 있는 주상절리가 있다. 높이 40m, 길이 1.5㎞에 달하는 강안 주상절리를 따라 트레킹을 하면서 병풍처럼 펼쳐진 수직의 절벽을 감상할 수 있다. 비 내린 뒤엔 폭포 수십개가 생겨나 절벽에서 커다란 물줄기를 쏟아낸다.
나룻배마을에서는 트랙터를 타고 인적이 드문 민통선 안 자연을 둘러볼 수 있다. 태풍전망대와 승전관측소(OP)는 남북을 가르는 휴전선이 팽팽한 긴장감을 느끼게 하는 곳. 전망대에서 내려오면 임진강 평화습지원이 있다. 노란 원추리와 데이지, 창포의 꽃사태를 만날 수 있다.
연천을 지나 북으로 달리던 경원선 열차의 남쪽 종착지가 백마고지역이다. 옛 철원역까지 철로는 놓여 있으나 열차는 더 이상 달리지 못한다. 신탄리역에서는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푯말을 단 녹슨 열차가 분단의 아픔을 말해준다. 해발 832m 고대산 정상에 서면 철원평야와 북녘 땅을 바라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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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호기자 shy@hk.co.kr
한국관광공사 사진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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