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추환 영남대 경제금융학부 교수
요즘 이동통신시장의 최대 현안은 요금인하와 보조금 과다지급 등 유통체계 개선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 이른바 ‘단통법’으로 불리는 법안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소모적인 보조금 경쟁을 지양하고 요금과 서비스 등 본원적 경쟁이 이뤄지길 기대하는 듯하고 통신업계 역시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데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영향력 남용을 제재할 수 있는 통신요금 인가제에 대한 폐지 찬반 이슈가 슬그머니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인가제가 요금인하와 경쟁활성화를 가로막고 있다는 주장이 일부에서 제기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가제는 정말 요금인하와 경쟁활성화에 걸림돌일까. 필자는 국내 시장현황이나 제도 측면에서 인가제가 요금인하를 저해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판단한다. 경쟁상황과 관련해서도 오히려 시장지배력을 낮출 수 있는 건전한 경쟁환경을 조성하는 장치로 인식하고 있다. 그 이유는 이렇다.
첫째, 요금인하 측면이다. 현행 전기통신사업법상 이미 요금인하는 인가대상의 예외이므로 이를 폐지하는 것이 소비자 후생증대에 아무런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인가제는 요금을 새로 책정하거나, 인상하는 경우에만 적용돼 요금이 적절한지, 기존요금과 비교해 비싼 것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오히려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부당한 요금(약탈적 요금설계, 타 사업자 고객차별 등)을 조절하는 장치다. 실제로 정부가 인가제를 활용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거나 가계통신비 절감 등 공익적 목표를 추구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제도의 폐지는 소비자 후생증대에 역행할 개연성이 높다.
둘째, 경쟁활성화 측면이다. 인가제는 현행법상 이통시장의 시장지배력을 견제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다. 우리나라 1위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42.1%)보다 8%포인트 이상 높고, 시장집중도(HHI)지수 역시 3,919로 미국(2,924) 영국(2,818), 기타 유럽평균(3,062) 등 선진국에 비교해도 월등히 높다. 지난 2월 발표된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의 ‘2013년 경쟁상황평가’에서도 “국내 이통시장은 경쟁이 미흡해 건전한 경쟁구조가 아니다”는 분석이 나왔다. 경쟁 불균형 시장일수록 요금인하와 같은 소비자 후생 측면은 상대적으로 열악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가제 폐지보단 이통시장의 지배력을 개선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 도입을 검토하는 게 소비자 후생을 위해 더 바람직하다. 다시 말해 정부가 효율적이고 공정한 경쟁촉진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이를 위해 경쟁상황 평가를 시행하도록 법(전기통신사업법 제34조)으로 정하고 있는 만큼 시장지배력을 견제하는 유일한 장치인 통신요금 인가제를 폐지하는 건 논리적 접근방식이 분명 아니다.
마지막으로, 규제 및 제도의 일관성 측면이다. 과거 KT의 초고속인터넷의 경우 2007년 48.4%로 시장점유율이 50% 이하로 떨어졌음에도 실질적 지배력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정책에 따라 2년 뒤인 2009년 12월 방통위 전체회의를 통해 약관인가 대상에서 제외됐다. 하물며 1위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이 52.8%에 달하며(KISDI 경쟁상황 평가 기준), 독점력 또한 10년 이상 고착화한 이통시장의 지배사업자에 대해 인가제 완화를 논의하는 것은 규제철학과 일관성 측면에서 시기상조다.
정부정책의 목표를 다시 곱씹어 보자. 결국 소비자(국민)의 후생을 극대화하고 공정한 산업질서를 확립하자는 것 아닌가. 시장선점 효과, 규모의 경제 효과, 망외부성 효과에다 단말교환과 같은 전환장벽 등 시장지배적 사업자에 극히 유리한 이통시장에는 지배력 남용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가 필수다. 현재로는 통신요금 인가제가 그에 맞는 유일한 제도로 보여진다. 소비자 후생도 높이고, 건전한 경쟁환경도 조성할 수 있는 장치가 ‘좋은 규제’ 아닐까. 정책당국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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