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일하는 외국 언론인들이 자주 고개를 갸웃거리는 한국 언론의 기사 가운데 ‘~한 것으로 알려졌다’는 말이 있다. 그 동안의 기자 경험에 비추어 취재원을 밝히기 곤란할 때 쓰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전체적 분위기로 보아 흐름은 분명하지만, 핵심 관계자들이 사실 확인을 해주지 않을 때의 표현이다. 소문이거나 관측일 뿐 사실이 아닐 수도 있고, 무엇보다 핵심 관계자의 확인을 빠뜨렸다는 점에서는 ‘미확인 사실’에 가깝다.
▦ 그런데도 언론계 내부는 물론이고 독자나 시청자도 이런 관행을 정색을 하고 탓하지 않는다. 자질구레한 사실보다는 전체적 진실이 중요하다는 의식이 자리잡은 때문이다. 이 또한 역사의 산물이다. 권위주의 시절 정권의 언론탄압으로 ‘사실’의 정확한 전달이 어려웠고, 설사 관계자들이 사실이라고 확인해도 나중에 거짓으로 드러나기 일쑤였다. 따라서 ‘형식적으로 확인된 사실’보다는 어떻게든 정권 비판이란 ‘진실’을 담는 것이 중요했다.
▦ 좋은 예가 있다. 신군부에 의해 강제로 정계은퇴를 당한 김영삼 전 대통령이 1983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3주년을 맞아 단식투쟁에 돌입했다. 이를 정확히 보도한 외국 언론과 달리 국내 언론은 이를 ‘재야인사 식사 문제’ 등의 작은 기사에 담았다. 암호 같은 표현이지만, 일반 독자들의 궁금증을 자아내어 사실 확인에 이르게 했다. 사실과는 거리가 아득한 기사였지만 행간(行間)을 읽는 버릇이 몸에 밴 국내 독자에게 진실을 전하기에는 충분했다.
▦ 시대가 많이 바뀌었지만 언론과 독자ㆍ시청자 모두 과거의 자세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언론은 얼마든지 사실 확인이 가능한데도 여전히 ‘~한 것으로 알려졌다’에 기댄다. 독자와 시청자도 기사를 그대로 보지 않고 뒤집거나 뜯어보려고 하고, 인터넷이나 SNS에 떠도는 괴담에 더 많은 신뢰를 보낸다. 구체적 사실이 가치 편향이 짙은 진실을 보완해 주어야 하는데도 현실은 거꾸로다. 민주화 이후 수많은 시대착오를 지켜봤지만, 의식ㆍ인식의 착오야말로 그 모든 착오의 뿌리다.
/황영식 논설실장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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