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오로딸’이라는 가톨릭 서적 전문출판사에서 지난달 나온 교황 프란치스코, 자비의 교회를 읽었다. 이 책은 ‘교황 즉위 후 첫 강론집’이라는 부제를 달고 나왔다. 종교에서 ‘강론(講論)’이란 신자를 가르치기 위한 설명을 말한다. 즉위 1년 남짓 동안 새 교황이 여기저기서 하고 다닌 이야기 등을 모은 책이라는 뜻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선출 이후 지금까지 세계적으로 숱한 화제를 뿌리고 있다. 무엇보다 그가 가난한 사람을 위한 교회를 천명하고 검소함으로 일관해 그 정신을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높이 평가 받는다. 8월 방한을 앞두고 교황의 면모를 보여주는 책들이 여러 종 나왔지만 이 만큼 그의 생각을 잘 전해 주는 책도 없는 것 같다.
지난해 9월 평화를 위한 밤기도 모임에서 그는 성경에 등장하는 일화 중 아마도 가장 널리 알려졌을 카인과 아벨 이야기를 했다. “하느님은 카인의 양심에 대해 물어보십니다.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 그러자 카인이 대답합니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이 질문은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자문해야 합니다. ‘나는 형제를 지키는 사람인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모두 형제를 지키는 사람입니다.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를 지키는 사람으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떤 위험으로부터 형제를 지키라는 것일까. 지난해 6월 일반 알현에서 교황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돈입니다. 우리는 이익과 소비라는 우상을 위한 희생제물이 되고 있습니다. 한겨울 추위에 사람이 길에서 얼어 죽는 일이 뉴스거리가 되지 않고 평범한 사건처럼 여겨집니다. 하지만 증권시장에서 주가지수가 10포인트 하락하는 것은 비극으로 여겨집니다. 사람이 쓰레기처럼 취급되고 버려지는 현실입니다.”
한 달 앞서 교황청 백주년 기념재단에서 그는 이런 상황을 뭉뚱그려 “현 사회의 위기는 경제적이고 재정적인 문제에서만 생겨난 것이 아니라 윤리적이고 인간적인 위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한 채 권력, 이익, 돈이라는 우상을 좇은 것이 사회적 활동의 기본 원리가 되었고 사회 조직의 결정적 기준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업이나 시장의 논리와 변수보다 인간 존재 자체가 더 중요함을, 인간의 존엄성이 손상되지 않도록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는 것이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임을 잊고 살았습니다.”
책을 덮고 불현듯 눈물로 마감한 지난달 19일 대통령 대국민 담화가 떠올랐다. “해경 해체” “고질적인 병폐”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개혁” “기업 문을 닫게 만들겠다” “엄정하게 처벌” “살인행위” “수백 년의 형” “대변혁” 같은 극단적인 표현들이 줄을 잇는 이 담화를 라디오 생중계로 들으면서 이상하게도 허전했다.
담화 전문을 찾아 다시 읽었다. 담화에는 세월호 참사 재발 방지책이 소상하게 제시돼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이런 대책들이 갖춰지고 잘 작동된다면 또 다른 참사를 막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아니 그 전에 이런 대책들이 갖춰지고 잘 작동될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세월호의 희생이 던지는 가장 큰 메시지는 교황의 말처럼 우리가 사업이나 시장 논리 보다 인간 존재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까맣게 잊고 살아왔다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담화에 이런 문제의식이 엿보이는 문장이 없는 건 아니다. 딱 한 군데이지만 대통령이 이번 사고의 직접 원인 중 하나로 ‘탐욕적인 이익만 추구하다 참사를 내고 말았습니다’고 말한 대목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선거에서 ‘경제민주화’를 이야기 하다 지금‘규제 완화’를 목청 높이는 대통령은 이를 지극히 비정상적인 일부 기업의 일로만 여기는 듯 하다. 이런 담화로는 멀지 않아 세월호 같은 참사가 되풀이될 것만 같아 두렵고도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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