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벼 풍작으로 연내 쌀 시장 개방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쌀 공급과잉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쌀 의무 수입량을 늘리면서 개방을 유예하기가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민단체들은 여전히 쌀 개방에 강력히 반발하는 입장이어서 난항이 예상된다.
3일 농림축산식품부 등에 따르면 2014년 양곡연도(2013년 11월~2014년 10월) 쌀 자급률이 4년 만에 90%대에 이를 전망이다. 2011년 83.1%이던 쌀 자급률이 꾸준히 올라 올해 92%까지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최소시장접근(MMA) 방식에 따라 올해 의무 수입하는 최소수입물량 40만9,000톤(2013년 기준 쌀 소비량의 9%)을 더하면 쌀 공급비율은 100%를 넘어선다. 쌀 공급량이 소비물량을 초과하게 된다는 얘기다.
더구나 최소수입물량은 해마다 늘어나는 구조다. 우리나라가 쌀 개방 시기를 2014년까지 10년 단위로 두 차례 미루는 대신 쌀 수입량을 매년 2만347톤씩 늘려왔기 때문이다. 1995년 5만1,000톤이던 쌀 수입량은 어느새 8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번에도 쌀 시장을 개방하지 않으면 수입물량을 최소 현재의 두 배 이상(국내 소비량의 20%) 늘려줘야 한다는 암울한 전망도 나온다.
결국 쌀 공급과잉은 쌀 개방 문제와 맞닿아있다. 수입물량이 늘어나는 만큼 국내 쌀 생산면적을 줄이지 않으려면 수입 쌀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조건으로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수입물량이 확대되면 충북 전체 벼 경작면적의 배 가량(8만ha)을 줄여야 한다.
정부는 사실상 쌀 관세화(시장 개방) 결단을 내려놓은 상태이다. 6월 중에 방침을 확정해 발표하고, 국회 사전설명을 거쳐 9월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한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처지였던 필리핀이 최근 쌀 관세화 유예 연장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데다, 늘어나는 수입물량을 감당하기보다는 관세화가 더 유리하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다만 농민단체 등의 반대가 변수다. 10년, 20년 차일피일 결정을 미루면서 찬반 논리는 한치의 양보 없이 맞서 접점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WTO와 관세화 유예 협상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갈릴 정도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의 입장은 “의무수입물량도 안 늘리고 관세화도 안 하는 현상유지”다. 박형대 전농 정책위원장은 “정부는 국제기구와 협상할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고율 관세를 어떻게 보장할지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며 “작년에 대풍이었다고 하지만 농경지 면적이 자꾸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감안해야 하다”고 말했다. 전농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쌀 관세화를 발표할 경우 상경투쟁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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