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정지역 환경지표 반딧불이 과거엔 농촌서 흔히 보였지만 지금은 이름난 서식지 찾아가도 운이 좋아야 관찰 가능
“워째? 찍을 수 있겄시유?”
충북 옥천군 안터마을 박효서(48) 이장의 대답이 퉁명스럽다. 괜히 사진 찍는다고 설치다가 반딧불이 다 내쫓는 거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짙게 배어 있었다. 때이른 더위로 반딧불이가 예년보다 열흘이나 일찍 나왔고, 1년에 한번 열리는 축제를 코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 뒤편 계곡은 민가와 농지가 없어 인공불빛과 농약피해로부터 자유로운 곳이다. 20여 년 묵어 습지로 변한 다랑이 논엔 버드나무를 비롯한 잡목과 풀이 무성해 반딧불이 서식지로는 최적이다. 어스름이 깔리고 사방이 어두워지자 도깨비 불처럼 풀숲에서 하나 둘씩 초록불빛이 반짝였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 계곡 위 아래서 한꺼번에 폭죽이 터지듯 춤추는 불빛은 혼을 쏙 빼놓을 만큼 황홀했다. 운이 좋았다. 이날 낮 기온은 30도를 넘었고, 바람마저 없었다. 음력 5월 초하루, 달빛조차 사라진 완전한 어둠 속에서 천상의 별빛과 지상의 반딧불이 완벽한 우주를 그리고 있었다. 이따금씩 들리는 산짐승소리와 새소리마저 초록불빛 속으로 빨려 들었다. 절정을 이루던 불꽃 쇼는 새벽 1시 무렵 조금씩 사그라졌다.
전국에 몇 안 남은 운문산반딧불이 자연서식지인 이곳도 언제까지 반딧불이를 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이웃마을엔 골프장이 들어선다고 시끄럽고, 반딧불이 서식지엔 온천 개발설이 돌고 있다. 작년엔 습지의 큰 나무들을 베어내는 바람에 애반딧불이가 한꺼번에 사라졌다. 마을 주민 신동석(77)씨는 “환경보존지구로 지정하면 좋겠는데 사유지여서 쉽지 않은 모양”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장갑수 영남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안터마을은 인공 증식이 어려운 운문산반딧불이의 개체 밀집도가 전국에서 가장 높은 만큼 자연발생지로서 보존가치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수 십 년 전만 해도 농촌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었던 반딧불이가 이제는 이름난 서식지에서도 운이 좋아야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곤충이 돼 버렸다. 환경파괴로 사라지거나 멸종위기에 몰린 생물이 반딧불이 뿐이겠는가? 내일(6월 5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환경의 날이다.
사진부 기획팀=박서강 기자 pindropper@hk.co.kr 최흥수 기자 choissoo@hk.co.kr
그래픽=강준구 기자 wldms4619@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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