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DS 상장 등도 미리 짜여진 각본
2조원대 승계재원 확보
경영권 지분정리 마쳤으나
'편법승계' 시비는 계속될 듯
삼성그룹이 3일 전격적으로 삼성에버랜드 상장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와병 중인 상황에서 나온 결정이라 더욱 주목되는 일이다. 이 회장이 지난 4월 귀국할 당시 에버랜드 상장에 대한 보고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에버랜드 측은 보도자료에서 '글로벌 패션·서비스 기업으로의 성장'을 이날 이사회에서 상장 추진을 결의한 배경으로 발표했다.
그룹의 신수종 사업인 바이오사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재원 확보라는 명분도 갖다 붙였다.
그러나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8일 삼성SDS 상장 계획 발표 이후 이미 예견돼온 삼성에버랜드의 상장 발표는 사실상 삼성그룹의 후계자로 낙점된 이재용(46) 삼성전자 부회장으로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예정된 수순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앞서 진행된 에버랜드 중심의 사업구조 재편, 삼성SDS의 삼성SNS 합병, 삼성SDS 상장 발표 등이 모두 '이재용 승계를 위한 사전포석'이었다는 분석인 셈이다.
이는 상장 이후 전개될 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지분가치 변화를 살펴보면 한층 더 명확해진다는 게 업계의 해석이다.
이 부회장은 1999년 삼성SDS가 발행한 분리형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주당 7천150원에 사들였다. 지분을 사는데 620억원이 들었다.
현재 삼성SDS의 상장 가격을 보수적으로 주당 14만원 정도로 잡았을 때 주식 870만4천312주(11.25%)를 보유한 이 부회장의 지분가치는 1조2천억원대에 달한다.
이 부회장의 지분가치가 늘어난 것은 지난해 삼성그룹이 사업구조 재편의 일환으로 삼성SDS의 삼성SNS 인수를 실행에 옮겼기 때문이다. 삼성SNS 지분을 갖고 있던 이 부회장은 지분비율에 따라 삼성SDS 지분을 2.44% 포인트 높일 수 있었다.
삼성그룹 측은 "삼성SDS의 상장 추진 결정은 ICT(정보통신기술) 사업의 글로벌화를 비롯해 순수하게 사업적 목적에 따라 결정된 것일 뿐"이라고 밝혔으나 상장 이후 지분가치 변동을 내다보면 이런 설명이 무색해진다.
이 부회장은 이보다 앞선 1996년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를 주당 7천700원에 사들였다. 삼성 계열사들이 '자발적으로' 실권한 CB 물량이었다. 당시 매입금액은 48억3천만원이다.
이 부회장은 삼성에버랜드 주식 25.1%(62만7천590주)를 보유한 최대 주주다.
오너 일가 중 이 회장의 지분 3.72%(9만3천68주)와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차녀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사장의 지분 각 8.37%(20만9천129주)를 더한 것보다도 많다.
2011년 KCC가 삼성에버랜드 지분을 매입할 당시의 가격인 주당 182만원으로 계산하면 이 부회장의 삼성에버랜드 지분 가치는 1조1천418억여원에 달한다.
즉 삼성SDS와 삼성에버랜드 두 회사 상장을 통해 이 부회장에게 사실상의 '몰아주기'로 불려주는 자산만 2조원이 넘을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이 같은 엄청난 재원은 이 부회장이 향후 최소 수천억원에서 수조원대에 달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속세 납입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거나 삼성전자 등 주력 계열사 지분 매입을 위한 '종잣돈'으로 쓰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에버랜드가 그룹 지배체제의 핵심인 만큼 오너 일가가 차익을 챙기기 위해 지분을 매각하기는 어려운 구조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 부회장이 두 회사의 상장 추진을 통해 승계 재원을 확보하는 것은 1996년부터 이 회장이 '편법 경영승계'라는 오명을 무릅쓰고 이 부회장에게 이 두 회사의 지분을 부여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애초 이 회장이 1995년 이 부회장에게 증여한 돈은 불과 61억원이었다.
이 돈으로 계열사 주식을 사들여 자금을 불린 뒤 그 재원으로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의 CB와 BW를 사들인 것이다.
삼성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등의 편법승계 의혹은 향후 시민단체 고발로 검찰과 삼성특검의 수사로 이어졌다.
이 회장은 2008년 에버랜드 CB 헐값 발행 혐의(배임)에 대해서는 무죄를 받았으나 삼성SDS BW 발행 등 일부 혐의는 유죄 확정판결을 받고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이재용 부회장도 2000년 대주주로 'e삼성' 설립에 참여하며 인터넷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1년 뒤 벤처 거품이 빠지면서 e삼성이 흔들리자 200억원 이상 적자가 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삼성그룹 9개 계열사가 총대를 메고 쓰러져가는 e삼성 지분을 사들였지만, 이 부회장은 참여연대와 경제개혁연대에 의해 고발당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대주주로서 참여한 사업에서 실패의 쓴맛을 봤지만 2003년 상무, 2007년 전무, 2009년 부사장, 2010년 사장, 2012년 부회장으로 초고속 승진했다.
이어 삼성SDS와 삼성에버랜드 상장 계획 발표로 승계 재원을 확보하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두 회사 지분을 최초 매입할 당시의 불법·편법 의혹이 여전히 말끔하게 해소되지는 않은 상황이라 향후 그룹 후계자로서의 지위와 정통성에 끊임없는 시비가 이어질 전망이다.
연합뉴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