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손 가장 많이 필요한데 선거판으로 몰려...
인력시장도 '텅텅' 발 동동
열매 솎기ㆍ양파수확 등
때 놓칠까 전전긍긍
웃돈 줘도 일손 못 구해
"공공근로 일시 중단하고 선거일 변경도 검토해야"
선거철마다 반복되는 농촌 일손부족 대란을 해결하기 위해 선거일을 조정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갈수록 농촌 일손부족이 심화하는데다, 선거가 농번기와 겹치면서 후보들, 특히 정치 신인들은 얼굴 알리기조차 어려워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경북도와 농가에 따르면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열리는 5월말~6월 초는 농촌에서 일손이 가장 많이 필요한 시기다. 모내기는 물론 마늘 양파 등 봄 작물 수확과 사과 배 등 과수 열매 솎기, 봉지 씌우기 등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노동력이 필요한 일이 이 시기에 몰려 있다.
모내기는 모를 육묘공장에서 키우고, 이앙기 등 기계화영농으로 상대적으로 일손부족 여파가 적은 편이지만 과수나 참외 수박 등 특수작물은 시기를 놓치면 농사를 망치게 된다.기계화도 어려워 선거 여파가 가장 크다.
지난달 22일부터 본격 선거전이 시작되면서 일손 부족과 함께 인건비도 크게 올라 농민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경주시 안강읍 이병호(73)씨는 요즘 모내기 시기를 놓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3.3㏊의 논에 벼를 재배하는데, 아무리 기계화가 돼 있지만 노부부만으로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이씨는 “마을 사람 대부분이 선거에 출마한 사람과 지연이나 혈연, 학연으로 얽혀 있다 보니 선거운동을 외면할 수 없다”며 “예년에는 품앗이로 해결했는데, 올해는 객지에 사는 아들 딸은 물론 조카들까지 염치불구하고 내려 오라고 해서 모내기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수농가는 그야말로 초비상 상태에 돌입했다. 5월 중순부터 본격화하는 열매 솎기와 봉지 씌우기 시기를 놓치면 한 해 농사를 망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주시 부석면 임곡1리 김원상(52)씨는 “봉지 씌우기를 해야 하는데, 마을에는 물론 영주시내 인력회사를 수소문해도 구하기 어렵다”며 “선거가 있는 해는 하루 일당을 1만~2만원 더 줘도 쉽고 편한 선거판으로 몰려 일손 구하기가 어렵다”고 한숨 지었다.
영천시 화북면 오산리 이장 이해한(64)씨는 영천시청을 방문, “과수농사철에 선거가 맞물려 있는 판에 시청에서 공공근로를 시작하는 바람에 농촌 일손을 구할 수가 없다”며 공공근로 시기라도 조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경북도와 시ㆍ군 등은 농촌인력지원센터를 운영하는 등 농촌일손돕기에 나섰지만, 올해처럼 선거철이 겹치면 속수무책이다. 보다 못한 경북도는 지난달 27일 도청 직원과 영천 및 경산 지역 경북도 사업소 등 임직원 등 160여명이 영천지역 과수원을 찾아 복숭아 열매 솎기 등을 지원하기도 했다.
이는 4년마다 실시되는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대통령선거(12월)나 국회의원선거(4월)와 달리 선거일 30일 이후 첫 번째 수요일이어서 농번기와 겹치는 데다 출마 후보들도 가장 많아 필요한 운동원도 가장 많기 때문이다.
농번기 선거는 농촌지역 후보들에게도 악재다. 이번 선거는 투표용지가 7장이나 되다 보니 대도시에서도 누가 누구인지 모르는 판에, 농촌지역 후보들은 유권자 얼굴조차 보기 어려워 논밭을 누비는 숨바꼭질 선거운동에 힘겨워하고 있다.
경북북부 기초의원으로 출마한 한 무소속 후보(67)는 “사과 적과하는 곳이나 모내기 논을 찾아 다녀 보았지만 하루 50명 만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농촌지도자 경상북도연합회 강중진(60) 회장은 “지방선거를 농번기를 피해 2월 중순∼3월 초순이나 7∼8월로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정부도 나름 고충이 있겠지만, 4년마다 반복되는 농민들의 고충을 헤아려주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용호기자 lyho@hk.co.kr
김성웅기자 ksw@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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