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경전(經典)
이 구 락
겨울산이 울면 눈이 내린다
겨울산에 눈 내리면 밤이 길다
긴 겨울밤 눈에 갇혀 산사(山寺)는 열반에 들고
풍경(風磬) 홀로 얼지 않고 밤새도록 염불 왼다
달빛이 눈 위에다 그걸 받아쓰고 있다
이구락 시인은 1951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경북대 국문학과 졸업하고 대구가톨릭대 국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7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고, 대구시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구시인협회상, 대구시문화상(문학 부문)을 수상했고, 저서로 시집 <서쪽 마을의 불빛> <그 해 가을> 시선집 <와선> 등이 있다.
해설 - 시인 성군경
이구락 시인은 한국문단 최초로 5행시를 연작시 형태로 쓰는 문인이다.
한국시단의 새로운 장르인 5행시는 시조의 선경후정이나 한시의 기승전결 같은 시상전개에 얽매이지 않고, 우연히 떠오른 시상을 욕심 부리지 않고 단일 이미지만으로 드러낸다. 그래서 일반인이 시를 편하게 음미할 수 있고, 더불어 누구나 시를 쉽게 쓸 수 있는 눈높이 시창작법이 가능하다.
‘달빛경전’은 달빛이 염불(풍경소리)을 눈 위에다 밤새도록 받아쓰는 산사의 겨울밤이라는 하나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다. 릴케는 시창작을 주로 영감에 의존하며, 자신은 그때그때 떠오르는 영감을 시로 ‘받아쓰는 사람’일 뿐이라고 하였다. 달빛경전을 릴케 식으로 표현하자면, 달빛은 어떤 ‘미지의 힘’이 불려주는 대로 눈 위에다 받아쓰기를 하는 시인이다. 이 시는 하나의 얘기만 하기 때문에 쉽게 읽히지만, 오래 그 장면을 음미하고 상상할 수 있어 5행시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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