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겸임교수
한국방송공사(KBS) 이사회가 지난달 길환영 사장의 진퇴를 결정하지 못하고 이번 주로 결정을 미뤘다. 예견했던 바다. 노조나 시민단체의 입장에서는 KBS의 독립성 확보를 위한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정부 입장에서 KBS는 정권안보를 지키는데 물러설 수 없는 보루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여당에 의해 임명된 이사들은 노조나 시민단체들의 압박보다는 정권의 압박을 더 무겁게 느낄 것이다. 알려진 바로는 이번 주 회의에서 표결로 결정한다고 한다. 쉽지 않을 것이다.
회심의 카드로 내민 안대희 국무총리 카드마저 실패한 마당에 길환영 사장까지 퇴진한다면 정부 입장에서는 수심이 더욱 깊어질 것이다. 청와대는 길 사장이 버티는 것과 퇴진시킨 후 후임 사장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빚어질 혼란 사이에서 고민했을 것이다. 길 사장을 퇴진시키고 제2의 길환영을 사장으로 임명하는데 성공한다 하더라도 그걸로 끝은 아니다. 이미 그 계산은 끝나지 않았을까.
이 대목에서 언론학자들이 성명서 등에서 제기한 지배구조의 개혁, 즉 특별다수제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공영방송 KBS와 MBC의 사장을 선임할 때 이사회에서 과반수의 찬성을 얻은 인사를 추천하는 절차를 밟아야 한다. KBS의 경우 11명 이사 중 7인이 정부·여당 추천이므로 청와대가 원하는 인사가 사장이 되는 것은 불문가지다. 그래서 이 구조를 개혁하자는 것이다. 구체적인 안은 특별다수제로서 4분의 3 이상의 찬성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되기만 한다면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아름다운 방안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현 불가능한 희망사항이다. 우선 이 문제는 국회에서 법을 개정해야 하는 일이다. 이 정부는 공영방송을 명실상부한 국민의 방송으로 헌납할 의사가 없다. 따라서 법 개정 자체가 불가능하다. 특별다수제로 하면 9명 이상 찬성해야 하고, 이는 사실상 여야합의로 사장을 선임하자는 것이다. 설령 법을 개정해 특별다수제가 도입됐다고 하더라도 여야가 합의할 수 있는 인사를 찾기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이것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마찬가지다.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공정성 회복은 편협한 전문성을 앞세운 언론학의 논리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이 문제는 정치의 영역이다. 자잘한 제도의 형식적인 변화로 근본을 바로잡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제도보다는 운영이 중요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KBS와 MBC는 지금 제도만으로도 청와대의 일상적인 간섭에서 벗어나 독립성을 회복했으며,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해 낙하산을 배제한 채 사장을 선임하기도 했다. 이 정부도 의지만 있으면 그렇게 할 수 있다. 따라서 본질은 정부의 의지에 있지 특별다수제 따위의 제도에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 이 정권에서 KBS의 독립성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나는 노조의 파업이 길게 가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짧은 기간 동안 역량을 결집해 내부에서 실천하라는 것이다. 그럴 수 있는 호기라고 본다. 세월호 참사에서 일어난 보도참화로 인해 촉발된 유족들의 항의방문이 여기까지 왔다.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지배구조 개혁이 아니라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및 재발 방지를 위한 진실보도다. 그리고 이를 출발점으로 삼아 국민들의 여망에 보답하고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다. 길환영 사장은 사실상 지도력과 권위를 상실했고 대다수 간부들도 이에 동조하고 있다. 더 이상 밖에서 승산없는 싸움을 벌이려 하지 말고 안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야 한다. 귀중한 시간을 재탕 프로그램으로 낭비하지 않도록 진실보도와 좋은 프로그램으로 공영방송의 진가를 보여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끝으로 언론학자들은 성명서의 후속작업으로 저널리즘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성찰과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기능인 양성 수준의 지금 교육으로는 언론학이 공영방송의 정상화에 기여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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