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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기업

입력
2014.06.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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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설립된 풍산은 동(銅)제품과 탄약 등을 생산하는 방산업체다. 사명은 고(故) 류찬우 창업주가 자신의 본관(풍산 류씨)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그는 1990년대 초 “다른 국내 재벌과 달리 사업 다각화를 하지 않고 금속분야에만 치중하는 이유가 뭐냐”는 문화인류학자의 질문을 받았다. “저는 임진왜란 당시 명재상이었던 서애 류성룡(1542~1607)의 12대 손입니다. 금속을 만들어야 무기를 제조할 수 있고, 나라를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400여년 전 조상에게서 기업활동의 DNA와 목적을 찾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 기업의 역사가 짧은 한국은 창업자와 그 후손에 의해 운영되는 가족기업이 대부분이다. 2010년 한 연구에 따르면 삼성 현대차 등 대기업을 포함해 국내 제조업체의 약 85%에 달한다. 전문경영인이 많다는 미국은 80%, 유럽연합(EU)은 나라별로 60~90% 정도다. 가족기업은 세계적으로 가장 일반적 기업형태라 할 수 있다.

▦ 일본은 장수 가족기업이 가장 많은 나라다. 100년 이상 된 기업이 5만 곳이 넘는다. 이 가운데 서기 578년 창업한 사찰 전문 건설기업 곤고구미(金剛組)는 세계 최고(最古) 기업이다. 장수 비결은 일본 특유의 유연한 ‘이에(いえㆍ家)’ 개념에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가족이 처한 상황에 따라 생물학적 아들이든 입양아든 사위이든 혈연관계나 출생순서를 가리지 않고 가장 유능한 사람이 가업을 승계하는 문화가 일찍 정착된 덕분이라는 것이다. 능력과 상관 없이 오직 핏줄인 장남이 우선 승계하는 한국이나 대만기업 전통과는 판이하다.

▦ 삼성이 가족기업의 한계를 넘어 글로벌 다국적 기업으로 진화한 아시아의 성공 사례라고 영국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보도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0년대 기업문화의 글로벌화, 성과기반 보상시스템 구축, 외국인 채용 등 미국식 모델을 도입해 당초 벤치마킹 했던 연공 중심의 일본 모델을 극복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3세 승계가 완성단계인 삼성이 앞으로 세계적 장수 기업이 되려면 일본식 ‘이에’ 개념 도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박진용 논설위원 hu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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