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단원고는 금기어 “현수막 보면 지금도 울컥”
주택가엔 여전히 정적만
“슬픔 딛고 이젠 힘 모아야”일부서 조심스런 목소리도
“단원고 앞을 지나거나 동네 여기저기에 걸려있는 현수막을 보면 지금도 울컥해요. 상처가 너무 컸잖아요.”
2일 안산 단원고 앞에서 만난 주부 김명주(56)씨는 수년째 다니던 수영을 한동안 중단했다. 차가운 물 속에 있을 아이들이 떠올라 도저히 수영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가 한달을 지나면서 김씨는 동네 친구들과 다시 수영을 하러 다니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무겁고, 혹여 사고가 날까 집을 나설 때마다 불안하다.
“눈물은 말랐지만 아직 웃을 수가 없어요. 우리도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야 하는데, 아직은 유족들에게는 미안하고….”안산시청 산하 기관에 근무하는 최모(34)씨는 안타까움에 젖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안산시가 정상을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은 있지만 유족들을 생각하면 미안한 감정이 앞선다는 것. 그렇지만 최씨는 요즘 평소 잘하지 않던 공원 산책을 나가거나 일부러 자전거를 타러 나간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산책이나 자전거로 동네를 돌아다니고 있어요. 그러다 보면 한 명 한 명 일상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해서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이날로 48일째가 됐지만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안산은 여전히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단원고 인근 주택가에는 아이들 웃음 소리마저 사라진 채 정적이 짙게 깔려있다. 의류 매장 등이 밀집돼 있어 ‘안산 명동’이라 불리는 중앙역 주변 거리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인근에 관공서와 대형 할인매장, 백화점, 음식점 등이 즐비하지만 거리에 사람은 눈에 띄게 줄었다. 카페나 식당에도 손님이 앉은 테이블은 한두 개에 불과했다. 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침몰사고 이후 안산지역 음식점, 노래방 등은 50% 이상 매출액이 감소했고 의류ㆍ패션ㆍ숙박업은 30~50% 가량 매출이 떨어졌다.
안산 주민들에게서는 ‘세월호’와 ‘단원고’라는 단어가 금기어가 된지 오래다. 택시기사 김기수(50)씨는 “손님을 태워도, 동료들과 있어도 이제는 ‘세월호’라는 얘기를 꺼내지 못한다”면서 “자식 키우는 부모 입장에서는 그 기억을 떠 올리는 것만으로 엄청난 고통인데 어떻게 빨리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겠냐”고 안타까워했다. 급기야 지난 30일에는 정부 공식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단원구 초지동 화랑유원지 내 주차장에서 박모(55) 씨가 나무에 목을 매 숨졌다. 합동분향소 인근에 혼자 거주하고 있던 박씨는 유서에서 ‘세월호 사고로 숨진 학생들이 불쌍하다. 어른이어서 미안하다’는 내용을 남겼다.
그럼에도 이제는 아픔을 가슴에 안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와동 체육공원에서 만난 나모(70)씨는 “또다시 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세월호 참사를 절대 잊지 말아야겠지만 이제는 슬픔에서 빠져 나와야 할 때가 된 것 같다”면서 “안산에서 산지 30여년이 넘었지만 이렇게 침체된 적은 없었는데 이대로 몇 달만 더 가면 안산시 전체가 쓰러질 것”이라고 말했다. ‘세월호 침몰사고 문제 해결을 위한 안산시민사회연대’ 관계자는 “이제는 유가족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을 간직한 채 같은 사고가 나지 않도록 힘을 모아야 할 때”라면서 “그러기 위해서는 시민들도 일상으로 돌아가 평소처럼 생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안산=김기중기자 k2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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