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도 41%로 추락…펠리페 왕세자에 왕위 계승키로
후안 카를로스(76) 스페인 국왕이 아들 펠리페 알폰소 왕세자(46)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퇴위한다고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가 2일 발표했다. 1975년 즉위한 지 39년 만이다.
라호이는 이날 생방송 대국민연설을 통해 “국왕께서 퇴위 의사를 밝히고 왕위 승계 절차에 착수하겠다고 알려왔다”며 “국왕께선 지금이 정상적으로 왕위를 물려줄 절호의 시간이라고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라호이는 그러나 퇴위 및 왕위 승계와 관련된 법적 체제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며 퇴위 시점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카를로스 국왕의 퇴위 결정은 스페인 왕실에 대한 여론 악화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올해 초 막내딸인 크리스티나 공주가 남편의 탈세 및 돈세탁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으며 왕실 인사 중 처음으로 형사 법정에 출석한 것이 결정타였다. 국왕 자신도 스페인 경제위기가 한창이던 재작년 아프리카 보츠나와에 코끼리 사냥 여행을 갔다가 엉덩이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해 급거 귀국하는 소동으로 원성을 샀다.
지난해 말 여론 조사에서 국왕 지지도는 전년 76%에서 41%로 급감했고 양위 찬성 여론은 45%에서 62%로 올랐다. 엉덩이에 이식한 인공관절 부위에 감염이 일어나 여러 차례 수술을 받는 등 고령에 따른 건강 악화도 우려를 낳았다. 라호이는 “국왕께서 국민들에게 개인적인 의사를 전하고 싶어 (퇴위)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카를로스 국왕은 그러나 재위 기간 내내 국민적 사랑을 독차지한 군주였다. 1975년 11월 군부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사망한 지 이틀 만에 입헌군주로 왕위에 오른 그는 자신을 후계자로 지명했던 프랑코의 뜻과 달리 스페인 민주화에 크게 기여했다. 1981년 우익보수 세력이 무력으로 의회 점거에 나섰을 때 국왕이 군 지휘부를 통제하고 쿠데타를 저지할 수 있었던 것도 그의 높은 인기 덕분이었다.
스페인 민주화가 정착된 후엔 활발한 외교 활동을 펼쳤고 바스크, 카탈루냐 등 분리주의 성향이 강한 지역들을 다독이는 구심점 역할을 했다. 1986년 김영삼 대통령 초청으로 부인 소피아 왕비와 함께 국빈 방한을 했고 2007년 스페인에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을 접견했다. 2007년 여론조사에서 ‘돈키호테’의 작가 미겔 세르반테스,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제치고 ‘가장 위대한 스페인’에 뽑힐 정도였다.
차기 국왕에 내정된 펠리페 왕세자는 건실한 이미지로 많은 왕실 공식 업무를 수행하며 신망을 쌓아왔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요트 선수로 출전했고, 지난해 9월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선 유창한 영어로 2020 마드리드 하계올림픽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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