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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호수 보며 걸으면 내 마음도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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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호수 보며 걸으면 내 마음도 호수

입력
2014.06.02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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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호수 보며 걸으면 내 마음도 호수

[부제목] 충북 괴산 산막이 옛길과 공림사 느티나무

시원한 숲 그늘 생각나면 산막이 옛길 떠올린다. 충북 괴산 땅, 맑은 호수 끼고 도는 예쁜 길이다. 숲 터널 지나며, 호수 보고 걸으면 미동 없는 수면처럼 마음의 흔들림 잦아든다. 이런 후에 오래되고 큰 나무 찾아가 그 아래로 기어든다. 볕 강해질 때, 나무가 내어주는 한 뼘 그늘이 얼마나 고마운지 새삼 알게 된다. 괴산에 이런 나무 제법 많다. 이러면 곧 닥칠 무더위가 하잘것없다고 느껴질 거다.

●괴산호 따라 걷는 ‘명품 길’

길에 얽힌 사연 알면, 걷기가 더 흥미롭다. 옛날, 옛날에…산이 겹치고 겹친 그 속에 마을 하나 들어앉았다. 산이 막아섰다고 해 ‘산막이 마을’. 첩첩산중이라 죄인 가두기 딱 좋았다. 조선 중기의 학자 노수신(1515~1590)이 을사사화(1545년)에 휘말려 실제로 이 두메에서 한동안 유배생활 했다. 감옥 같은 마을에 세상은 관심 두지 않았다.

세월 한참 지나 그의 후손 노성도(10대손)가 선조의 자취 더듬어 시나브로 잊힌 마을까지 왔다. 여기서 비경을 만났다. 마을 에둘러 흐르는 달천 주변 천연한 풍경에 마음 빼앗겼다. 아홉 경승지 골라 ‘연하구곡’이라 이름까지 붙였다.

세월 또 한참 지났다. 1950년대 댐(괴산댐)이 들어섰다. 물길이 막혀 호수(괴산호)가 생겼다. 노성도의 애를 그토록 태웠던 연하구곡이 물에 잠겼다. 산막이마을과 옆 마을 이어주던 섶다리, 돌다리도 무용지물이 됐다. 나룻배로 마을 들고나던 사람들, 불편하다며 산비탈에 위태로운 벼랑길 냈다. 이것도 여의치 않자 아예 마을을 떠났다. 50여년 흐르며 길의 흔적은 흐릿해졌다.

이 벼랑길 복원한 것이 산막이 옛길이다. 칠성면 사은리 사오랑 마을에서 산막이 마을까지 약 4km 구간. 걷기열풍으로 팔도에 ‘ㅇㅇ길’ 한창 조성되던 지난 2011년의 일이다. 그런데 이게 ‘대박’ 났다. 호수 끼고 도니 풍경 수려하고 나무 무성하며 경사 완만한 덕이다. 편도 30~40분 걸리는 거리도 걷기에 부담 없고 수도권에서도 가까워 인기 급상승. 군청 관계자에 따르면 길 열리던 그해 약 88만명, 이듬해 약 120만명, 지난해 약 140만명이 이 길을 걸었다. 숱한 ‘ㅇㅇ길’ 중에 이만하면 성공한 축에 든다는 평이다.

이 길을 걷는다. 사오랑 마을에서 시작이다. 들머리에 만들어 놓은 출렁다리 건너보고 언덕에 놓인 흔들의자에 앉아 호수 바라보며 마음도 살핀다. 길은 나무데크로 잘 만들어졌다. 차례로 나오는 망세루, 호수전망대, 괴음정, 고공전망대는 잊지 않고 들른다. 풍경 조망 포인트다. 특히 느티나무 고목 위에 만든 괴음정, 바닥을 투명유리로 댄 고공전망대가 백미다. 호수 위에 떠 있는 것 같은 짜릿함 느껴보고 호수와 건너편 언덕 위의 정자(환벽정)가 어우러진 우아한 풍경도 감상한다.

이거 말고도, 곳곳에 아기자기한 볼거리 많으니 걸으며 챙긴다. 호랑이가 살았다는 호랑이굴, 옛 사람들이 비를 피하며 쉬어갔다는 여우비 바위굴, 여기에다 연리목, 정사목, ‘산(山)’을 닮은 뫼산바위, 스핑크스바위, 매바위, 여인의 엉덩이 닮은 나무, 물레방아…. 이름만으로도 귀 쫑긋하게 하는 것들 참 많다. 중간에 약수터도 있다. 옛 사람들 질곡 오롯한 길에 인공의 것들 너무 가미한 것 아니냐고 따져 물을지 모를 일이다. 재미있어야 또 찾는 법이다. 물론 숲 울창하고 호수 참 맑다. 연하구곡은 물에 잠겼어도 경치 빼어나다.

싱싱한 숲길 끝이 산막이 마을이다. 현재 여섯 가구 산다. 마을이라 부르기도 뭣하지만, 찾는 사람 많아지며 세 가구에서 그나마 세 가구 늘었다. 마을에 도착하면 노수신 적소(수월정)는 가본다. 그가 귀양살이 하던 곳이다. 산막이 선착장(나루) 지나 2~3분 걸으면 만난다. 단출해도 정갈하다. 툇마루 앉아 바람소리 듣는다. 세상사에서 한 발만 빼면 마음 참 평온해진다. 나루 주변으로 가서 게으름도 부린다. 볕 받아 오글거리는 호수와 무르익은 신록에 눈이 호강한다. 유람선 오가니 이거 타고 출발점으로 돌아가거나, 더 걷겠다면 온 길 되짚어 간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면, 산책길, 유람선 다니는 물길 말고 등산로가 있다. 호수 에워싼 등잔봉(450m), 천장봉(437m), 삼성봉(550m)을 잇는 능선 길이다. 땀 좀 흘리고 싶다면 이 길이 제격이다. 편도 2~3시간 거리. 능선에 올라설 때까지 경사가 급해 대여섯번은 쉬어야 하지만, 일단 능선만 타면 걷기 수월하고 장쾌한 전망도 볼 수 있다. 산막이 옛길의 상징이 된 ‘한반도 지형’도 능선 타야 제대로 볼 수 있다. 등잔봉과 천장봉 중간에 있는 ‘한반도 전망대’가 포인트다. 신록 완연한 산과 ‘S’자로 휘어지는 푸른 물길이 그림처럼 어우러진다. 애써 오른 수고 아깝지 않을 풍경이다. 등산로 따라 천지사방에 소나무들이니 솔향기도 참 진하다.

●천년 느티나무 그늘을 탐하다…공림사

괴산에선 멋진 느티나무 한 그루쯤은 구경한다. 괴산’의 ‘괴’는 느티나무 ‘괴(槐)’다. 그만큼 나무 많은 고장이란 의미일 거다. 이 땅 사람들에게 나무는 삶의 중심 잡아주는 벗이다. 나무와 놀며 자라고, 커서는 나무에 기대 시름 달래고 희망 지핀다.

생각해보면, 퍽퍽한 도시생활에서 나무 한 그루 오롯이 살핀 기억조차 희미하다. 한철 사는 꽃보다 더 든든한 것이 나무다. 이러니 애써 찾은 이곳에서 질리도록 보고 간다. 오래된 나무는 숨 멎을 듯 경건하다. 이런 나무는 머리가 아닌 가슴에 남고, 여운도 오래 간다. 그래서 신령스런 나무의 점잖은 엄숙함에 주눅 드는 일도 나쁘지 않은 경험이다.

목적지는 공림사. 청천면 사담면 낙영산 기슭에 들어앉은 신라의 절(873년)이다. 자정선사가 세웠다. 일주문 지나 느릿하게 걸으면 절 마당에 늘어선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반긴다. 열 그루쯤 되는데 ‘계절의 여왕’이 훑고 지난 덕에 저마다 잎 푸르고 가지들 싱싱하다. 나무 뒤로 정갈한 사찰. 이 풍경은 또 어찌나 고상한지. 나무들 끼고 돌며 산책하고 그늘에 기어들어 망중한도 즐긴다. 볕 강해지니 나무 그늘 참 요긴하다. 필요한 것들 제때 딱딱 내어주니, 나무가 사람 보다 낫다.

‘천년 느티나무’는 찾아서 꼭 알현한다. 범종루 다음 요사채 옆이다. 보호수지정 표지석에 적힌 대로는 수령 990년, 높이 12m, 둘레 8m. 나무 한 그루에도 경탄을 넘어 경외감이 들 때가 있다. 이 나무가 그렇다. 아흔 촌부의 이마 주름 같은 아름드리 몸통, 바람에 날리는 여인의 머리카락처럼 하늘 사방으로 흩어진 가지들, 영겁의 세월동안 피고 졌을 초록의 이파리들, 어느 것 하나 예사롭지 않으니 맞닥뜨리는 순간 입이 쩍 벌어지고 눈 번쩍 뜨인다. 외모에 걸맞는 전설도 한 자락 걸쳤다. 언젠가 절을 보수할 때 절에서 나온 구렁이 한 마리가 느티나무 아래로 들어갔다. 바람 심하게 불면, 바람에 쓸리는 나뭇가지소리가 쩌렁쩌렁한데, 이게 구렁이 울음소리라고 사람들은 여긴단다.

나무에 귀 기울이면 구렁이 울음소리 대신 천년 전의 흥성거림 들을 수 있을 거다. 보살들의 발자국, 휘영청 밝은 달빛…. 천년의 시간 뛰어넘어 당시의 흔적 오감으로 오롯이 전해진다. 오래된 것들의 신비함이란 이런 거다.

부도탑 주변 소나무 숲까지 내쳐 걸어본다. 태고의 것처럼 싱싱한 숲이다. 나무 몸통마다 착생식물들 잔뜩 붙어 자란다. 싱그러운 솔향기, 한갓진 사위가 마음 참 편안하게 만든다.

경내도 산책한다. 초록색 잔디가 융단처럼 깔린 대웅전 앞마당을 거닐고 가람 뒤로 보이는 낙영산의 암봉도 천천히 음미한다. 공림사는 충북 보은 법주사의 말사. 조선 초 무학대사의 제자 함허대사가 중창해 ‘함허의 도량’으로 불린다. 미동 없이 고요한 가람들, 풍경소리, 범종소리 은근하니 마음 절로 살피게 된다. 내면으로 침잠, 언제 찾아도 늘 받게 되는 산중 사찰의 선물이다.

공림사 들머리는 사담계곡. 날 더 더워지면 호젓하게 앉아 쉬며 발 담그기 좋은 곳이니 잊지 말고 기억해 둔다.

●여행메모

부담 없이 걸으려면 산막이 옛길 산책로나 유람선 등을 이용한다. 등산 겸하려면 등산로 이용해 산막이 마을까지 간 후 되돌아 나올 때 산책로나 유람선 이용한다.

등산로는 두 코스가 있다. 1코스는 사오랑 마을→노루샘→등잔봉→한반도 전망대→천장봉→삼성봉→산막이 마을(총 4.4km로 편도 3시간 거리). 2코스는 사오랑 마을→노루샘→등잔봉→한반도 전망대→진달래능선→진달래동산(총 2.9km로 편도 2시간 거리). 2코스로 산막이 마을까지 간 후 노수신 적소 둘러보고 산책로 따라 출발점으로 돌아오니 약 3시간 걸렸다.

산막이 마을 지나 굴바위 나루까지 이어진 약 3km의 길은 지난해 봄 개장한 ‘충청도 양반길’의 일부 구간. 강 건너로도 약 20km 연결되는데, 지금은 다리가 없어 산막이 옛길과 충청도 양반길을 연결해 걸을 수는 없다. 군청 관계자에 따르면 내년 9월에 다리가 놓일 예정이다. 이러면 두 길을 연결해 걸을 수 있게 된다.

중부고속도로 증평IC 또는 중부내륙고속도로 괴산IC로 나와 칠성면소재지까지 간 후 괴산댐 방향으로 약 5분쯤 가면 산막이 옛길 주차장(사오랑 마을)이다. 산막이 옛길 주차장에서 공림사까지 차로 약 30분 거리다. 괴산군청 문화관광과 (043)830-3452

괴산=글ㆍ사진 김성환기자 spam001@hks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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