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박근혜정부의 대북정책은 진퇴양난에 빠진 형국이다. 지난 1월 박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을 통해 ‘통일 대박론’을 천명할 때만해도 5년 넘게 단절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남북관계에 숨통이 트이는 듯 보였다. 실제 남북은 2월 고위급 접촉 합의를 거쳐 3년 4개월 만에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성사시켜 한반도의 대화 분위기가 무르익기도 했다.
정부는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통일 대비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될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발족을 공식화했고, 3월엔 ‘드레스덴 제안’으로 명명된 박 대통령의 통일 구상이 발표됐다. 드레스덴 제안은 박 대통령의 대북 청사진인 ‘한반도신뢰프로세스’를 기반 삼아 북한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복귀시키는 중ㆍ장기 로드맵이었다.
그러나 드레스덴 제안이 나온 직후부터 오히려 남북관계는 꼬이기 시작했다. 북한이 박 대통령의 구상을 ‘흡수통일론’으로 규정한 탓이다. 북한 당국은 복합농촌단지 조성, 교통ㆍ통신인프라 건설 등 세부 제안에 대한 평가 없이 박 대통령의 대북관을 걸고 넘어지면서 노동미사일 발사, 4차 핵실험 가능성 거론 등 무력 대응으로 맞서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지금도 남북관계는 해법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악재만 쌓이는 모양새다. 특히 4월 세월호 참사가 터진 이후 국정 운영이 사고 수습에 집중되면서 대북정책은 더욱 후순위로 밀리게 됐다. 당초 5월 출범이 예정됐던 통일준비위는 가동 여부를 기약하기 어렵고, 드레스덴 후속 조치도 추진 동력을 잃어버린 상황이다. 여기에 북한은 일본과는 납치자 문제 재조사에 합의해 놓고는, 억류 중인 한국인 선교사 김정욱씨에게는 무기노동교화형의 중형을 선고해 우리 정부의 태도 전환을 거세게 압박하고 있다. 최근 유엔의 북한인권 현장사무소를 한국에 설치키로 한 점도 인권 문제를 ‘체제도발 책동’으로 규정한 북한과의 대립을 심화시킬 게 뻔하다.
북한 전문가들은 정부가 정치적 결단을 통해 북한에 신뢰를 보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1일 “드레스덴 제안에 포함된 각종 사업들은 5ㆍ24 대북 제재 조치의 해제를 전제로 하지만 정부는 북핵 문제가 걸려 있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며 “남측의 가시적 유화 조치가 없는 한 북한은 흡수통일 의구심을 떨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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