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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노역 어린 넋… 선감학원 위령비 마침내 빛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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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노역 어린 넋… 선감학원 위령비 마침내 빛보다

입력
2014.06.02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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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진 16년 만에

‘선감도 소년들이시여/어머니 기다리시는 집으로/밀물치듯 어희 돌아들가소서/이 비루한 역사 용서하소서.’

지난달 29일 오전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경기창작센터 본관 옆 공터에 조촐한 제사상이 차려졌다. 제례 복장을 한 남성들은 제사상 뒤 방패연을 형상화한 비석을 향해 술을 따르고 절을 올렸다. 비석에는 ‘선감학원 어린 넋을 위로하며’란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일제강점기 강제노역으로 수많은 희생 소년을 낳은 청소년 감화시설 ‘선감학원’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는 위령비가 추진 16년 만에 세워졌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지원 없이 온전히 시민과 예술가 등이 힘을 모았다.

지역사연구모임 회원 등 시민들이 십시일반 모금을 했고, 경기도가 선감학원을 이어받아 예술작업공간으로 바꾼 경기창작센터는 부지를 제공했다. ‘농부시인’으로 유명한 홍일선 시인은 ‘한 역사’란 시를 지었고, 충남 보령시의 태양석재는 조각용 석재를 제공했다. 인근에 작업실이 있는 김용현ㆍ장을봉 조각가는 재능기부 형식으로 기꺼이 위령비를 제작했다. 1989년 일본에서 아!선감도라는 자전소설을 출간해 선감학원의 실상을 세상에 알린 이하라 히로미츠(79ㆍ井原宏光)씨도 뜻을 함께 하며 위령비 제막식에 참석해 희생자들의 넋을 기렸다.

1942년 5월 선감도에 설립된 선감학원에서는 8~18세 소년 500여 명이 수용됐다. 많은 소년들이 강제노역을 견디지 못해 숨졌거나 바다를 건너 탈출하려다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1995년 소년 2명의 유골이 발굴된 인근 야산에는 아직도 다수의 희생자 유골이 묻혀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방 뒤인 1946년 2월 선감학원은 경기도로 이관됐지만 군사정권 시절까지 구두닦이, 신문팔이 등이 이유 없이 끌려가 강제노역 등 고초를 겪었다.

박희주 경기창작센터장은 “지역사회 예술연계 차원에서 시작했는데 취지에 공감한 예술가들이 동참해 생각보다 쉽게 건립했다”고 밝혔다. 안산지역사연구모임 회원 정진각씨는 “언젠가는 선감학원의 슬픈 역사가 낱낱이 드러나고, 희생자들이 묻힌 야산에 위령비가 세워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창훈기자 ch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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