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례법 무용지물 우려
아동 학대 신고가 접수될 경우 아동보호전문기관과 경찰이 동행해 현장조사를 하도록 한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특례법)이 9월부터 시행되지만 현장에서는 벌써부터 무용지물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아동 학대 신고에 비해 상담ㆍ조사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1일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에 따르면 전국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월 평균 아동학대 의심 신고건수는 2013년 1,038건에서 올해 1,336건으로 30% 가량 증가했다. 일 평균 신고건수도 34건에서 44건으로 늘었다. 지난해 경북 칠곡, 울산 울주에서 의붓딸을 숨지게 한 아동학대 사건 등이 잇따르면서 생긴 변화다.
그러나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인력 규모를 고려할 때 법에 규정된 현장조사와 상담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전남 지역의 경우 경찰 조직은 1개 청, 21개 경찰서, 206개 지구대 파출소가 있지만 아동보호전문기관은 3곳뿐이다. 상담원도 전남 지역을 통틀어 20명에 불과하다. 한선희 전남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새벽 1시에 경찰과 우리 상담원이 동행해 현장조사를 하고 새벽 5시에 귀가 후 다시 출근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당장 상담원 1명의 충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특례법 시행을 앞두고 학대 신고가 급증하고 있는데 상담원 수는 그대로”라며 “현 상태로라면 아동학대특례법은 ‘기름이 없어 운행 불가능한 신형 차’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피해 아동을 보호하는 격리 시설이 전국에 36곳뿐인 것도 문제다. 아동학대특례법에서는 가해 부모와 피해 아동을 격리시키는 조치를 법으로 보장ㆍ강화했지만 막상 아이들을 격리할 곳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다. 김경환 전북서부아동보호전문기관 관장은 “학대 피해 아동들은 격리해 전문가가 치료하고 돌봐야 하는데 지금은 아이를 격리할 곳조차 없다”며 “어떤 상담원은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 자기 집으로 데려 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학대 피해 아동 중 20% 만이 전용 쉼터에서 보호되고, 나머지는 일반 청소년 쉼터나 양육 시설에서 보호 중이다.
전문가들은 특례법이 실효성을 가지려면 아동보호 인프라 확충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미국 아동학대 상담원들은 1인당 12~16건의 사례를 관리하지만 우리는 1인당 50건의 사례를 담당하고 있다”며 “사람이 부족해 사후관리가 안 되고, 결국 재학대가 발생해 피해가 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선희 관장은 “현재 기관마다 6~7명인 상담원 수를 최소 15명으로 늘리고 아동보호전문기관을 전국 100개소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옥진기자 clic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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