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산 보육원 방문 계기로 아이들 웃음에 나눔 깨달아
압구정서 웨딩사진 찍다가 작업실도 성수동으로 옮겨
"내 직업 너무 자랑스러워, 무료 결혼식도 진행할 것"
“그렇지! 그 표정, 좋아요! 여기 보세요. 미소!”
1일 서울 성수동 ‘서울숲사진관’. 지적장애를 앓는 인철(7ㆍ가명)군이 아빠, 엄마와 함께 사진관 문을 열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사진작가 한우진(41)씨가 긴장한 듯 엄마 손을 놓지 않는 인철이를 자연스럽게 스튜디오 안쪽으로 이끌었다. 의자에 앉은 인철이 뒤로 부모가 나란히 섰다.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지 못하던 소년은 “잘 생겼네” 등 한씨의 집요한(?) 칭찬이 계속되자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가족들은 한씨의 능숙한 리드에 경직된 표정을 풀고 행복한 미소로 카메라 앞에 섰다. 사진 촬영을 마친 인철이의 부모는 “가족 사진은 처음”이라며 “보물같은 추억이 됐다”고 말했다.
한씨는 자신을 ‘자원봉사자 한우진’으로 소개했다. 촬영경력만 20년인 그는 ‘자원봉사자’라고 불릴 때 더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소외된 이웃에 무료로 사진 촬영해 주는 봉사를 15년째 계속해오고 있다.
한씨는 작년 10월부터 서울 성수동서 장애인ㆍ한부모ㆍ다문화 가족 등 경제적으로 어려운 이웃들에게 ‘추억 만들기’ 도우미를 자처하고 있다. 매주 2, 3가구씩 20여 가구의 가족사진을 찍는다. 지금까지 무료로 영정사진을 찍어준 독거노인도 30명이 넘는다. 약 8개월 동안 90여명의 어려운 이웃이 그의 카메라 앞에 섰다.
한씨의 봉사활동은 1999년 남산 보육원 방문이 계기가 됐다. 당시 20대였던 그는 호기심에 보육원을 찾았다가 나눔의 행복을 알게 됐다. 10여 명의 보육원 아이들은 2, 3시간 함께 공을 차고 술래잡기를 했을 뿐인 그에게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한씨는 “아이들의 웃음으로 얻은 행복이 봉사활동의 시작이 됐다”며 “단 몇 컷의 사진으로 받는 가장 행복한 미소에 중독돼 봉사를 그만두지 못한다”고 웃었다.
사실 한씨는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 사이에서 웨딩사진을 잘 찍기로 유명했다. 8개월 전 성수동으로 옮기기 전까지는 사진작가들에게 ‘노다지’로 불리는 압구정동에서 생업으로 스튜디오를 운영했다. 그가 이런 스튜디오를 옮긴 이유는 단 하나, 봉사활동을 더 열심히 하기 위해서였다. “어느 순간 웨딩사진을 기계적으로 찍어내는 자신에게 신물이 났습니다.”
한씨는 웨딩사진 촬영에서 익힌 웨딩플래너 경험을 살려 저소득층을 위한 무료 결혼식도 진행할 예정이다. “돈이 없어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이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선사하고 싶습니다. 사진 한 장으로 행복을 전하는 직업이 자랑스럽습니다.”
김관진기자 spiri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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