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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정치적 동물인가?

입력
2014.06.0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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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성향에 생물학적 요인 크게 작용해

선천적 다양성을 선거로 표출할 수 있어야

내 가까운 친지의 경우를 제외하곤 타인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슬프고 애통하게 느낀 적이 없다. 아마도 세월호 희생자들 대부분이 내 딸 아이와 같은 나이였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내가 나이가 들면서 더 감성적이 된 탓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나라를 이 꼴로 만든 내 스스로에 대한 무기력과 책임감이 더 큰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책임감은 반성으로 이어져야 하고, 반성은 변화를 요구한다. 민주국가에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선거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어려운 문제 하나에 직면한다. 나와 정치적 성향이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전통적인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을 결정짓는 주요한 요인은 부모의 영향이나 성장과정에서의 교육이다. 또 경제ㆍ사회적 지위가 정치적 성향 결정에 중요한 요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정치적 성향에조차 ‘생물학적’ 근거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들이 점점 많이 나오고 있다. 사회에 대한 태도조차 생물학적인 요인, 즉 유전적 영향을 받는다는 논문은 1986년에 ‘미학술원회보’에 발표된 적이 있다. 그러나 이 연구는 사회과학자들에게 외면당하고 과학계에서도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적어도 최근까지는 그렇다. 이 논문에서 저자들은 일란성 쌍둥이와 이란성 쌍둥이들의 비교를 통해 정치적 성향에도 생물학적인 결정 인자가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 밝혔다. 최근에는 과연 어떤 유전자나 호르몬 혹은 생리적 반응이 사람을 더 보수적으로 또는 진보적으로 만드는지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다. 잘 알려진 연구 결과들을 보면 개인의 성격, 즉 변화를 용인하는 성격을 가진 사람과 질서에 더 집중하는 성격의 사람들은 다른 정치적 성향을 가진다. 나아가 이 성격을 결정짓는 근저에는 매우 다른 생리적 반응이 존재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즉 혐오스럽거나 두려운 대상에 대해 더 강하고 장기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강한 군사력과 엄격한 형벌 제도에 대해 우호적이며, 긍정적인 자극에 더 강한 반응을 보이는 그룹은 이민자나 새로운 제도에 개방적이다.

물론 미국이나 유럽에서 진행된 이런 연구가 우리나라에 100%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1950년대, 1970년대 그리고 2000년대의 대한민국은 하나의 나라라고 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급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령별로 대화가 안 될 정도로 상이한 정치적 견해를 갖는 것은 당연한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근저에 존재하는 생물학적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떤 정치적 실천도 불가능할 것이다. 인간의 정치적 성향에 생물학적 근거가 있다는 것이 암울한 소식일까. 다수가 믿고 있는 민주주의의 장점, 즉 토론을 통해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은 허황된 믿음일 뿐인가. 나는 정치의 생물학적 근거가 오히려 정치적 갈등을 해결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같은 현상을 보고도 다르게 인지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길 바란다. 즉 정치적 성향의 차이는 반드시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을 받아들이고 반응하는 방식의 다름에서 기인할 수 있다. 사실 정치인들은 이런 심리들을 잘 알고 있다. 선거철만 되면 나타나는 네거티브 공세나 과장 광고들은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목적 보다는 자기편을 응집시켜서 투표장으로 향하게 하려는 목적이 크다. 짧은 선거운동 기간 중 대중의 관점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기와 정치적 성향이 같은 사람을 얼마나 많이 투표장에 가게 하느냐가 당선을 결정짓는 열쇠다. 나는 오래 전 아리스토텔레스가 설파했던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주장에 동의한다. 그러나 이는 그의 생각처럼 인간의 ‘사회적’ 특성이 아니라 정치 성향을 결정짓는 ‘생물학적’ 특성 때문이라고 본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높은 사람들은 투표 참여율이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번만은 자신의 의지로 이런 유전자의 벽을 뛰어 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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