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일본이 납치자 문제해결에 따라 대북제재를 해제하기로 29일 합의하면서 동북아 정세에도 상당한 파장이 불가피해졌다. 일본이 북한을 겨냥한 한반도 주변국의 공조체제에서 한발 비켜서면서 당장은 남북관계나 비핵화 프로세스가 삐걱댈 것으로 보인다. 반면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려는 기존 정책이 답보상태에 빠진 만큼 이번 기회에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다면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우선 일본과의 합의로 국제적 고립이나 돈줄에 숨통이 트인 북한은 남측을 향해 아쉬울 게 없다는 자세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북한이 28일 노동신문을 통해 “박근혜정부에서는 남북관계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고 비난한 것은 심상치 않은 대목이다. 남북관계가 사실상 단절됐던 이명박정부 초기에도 북한은 ‘비핵개방3000’에 반발해 비슷한 입장을 밝혔다.
대화 여건을 조성해 차근차근 북한과의 협력 수준을 높이려던 우리 정부 전략은 일본의 돌발행동으로 차질을 빚게 됐다. 더구나 북한은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에 대해 줄곧 폄하하고 있다.
관건은 대북정책의 유연성이다. 원칙만 앞세우다가 낭패가 우려되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5ㆍ24조치 완화와 남북 고위급 회담 제안이 거론된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북한을 다루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6자회담의 효용성도 도마에 올랐다. 일본이 국내 정치 어젠다에 집착하면서 북한이 기댈 여지를 없애 비핵화를 달성하려던 주변국의 구상도 크게 흔들릴 조짐이다. 그 사이 국제사회가 가장 우려하는 핵능력 고도화에 북한이 한발 더 다가설 수도 있다.
이에 일본을 제외한 한미중 3국 중심의 비핵화가 추진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박 대통령 대선 공약인 한미중 전략대화나 과거 4자회담을 통한 해법이다. 외교 소식통은 “일본은 과거 6자회담에서도 납북자 문제만 계속 제기해 물을 흐린 전례가 있다”고 말했다.
이럴 경우 북한을 상대로 한 대화 문턱은 낮아질 전망이다. 대북공조가 흐트러져 엄격한 비핵화 사전조치를 고집하기 곤란해졌기 때문이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6월 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계기로 북핵문제의 새로운 해법이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31일 한미일 국방장관 회담을 앞두고 3국간 공조체제에 미칠 영향도 관심이다. 일단 국방부는 “북일 합의와 한미일 정보 공유는 관련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3국 공조의 초점이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에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과거사 문제를 놓고 한일간에 신뢰가 추락한 상황에서 일본의 마이웨이 행보는 양국관계 경색을 심화시키기 마련이다. 이는 대북 안보공조의 균열은 물론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황지환 서울시립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세월호 참사로 우리 정부의 안보라인이 사실상 휴업 중인 상황에 일본이 뒤통수를 때리면서 관계개선은 더욱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김광수기자 rollings@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