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이드북이다. 그렇게 분류하는 게 좋겠다. 2014년의 대한민국을, 스마트폰 화면에 현란하게 어리는 위장된 선진사회의 이미지와 과거로의 퇴행을 굳이 감출 생각이 없는 권력의 근엄한 표정과 20대 80의 구조에 순응해버린 만연한 열패감에 가려 있는, 우리 사회의 속살을 보여주는 가이드북이다. 이 책을 들고 찾아가는 대한민국 구석구석엔 ‘여전히 싸우고 있는’ 우리의 이웃들이 있고, 싸울 수밖에 없게 만드는 차별과 폭력의 구조가 있다. 대한민국의 가장 뜨거운 풍경 속으로 안내하는 책.
“해고 후 천막 농성을 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집회에 참가했다. 한 여교사는 아이들이 ‘무능하면 짤리는 게 당연하죠’라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고, 세상이 너무 괴물 같다고 했다. 부유한 집 아이들도 아니고, 누굴 짜르기보다 짤리는 처지에 설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줄 모르고 약자와 연대를 가로막는 사회가 만들어낸 괴물. 오직 제 성공에만 집중하라고 강요하는 어른들이 만들어낸 괴물.”(148~149쪽)
섬과 섬을 잇다라는 제목에서 ‘섬’은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이상 투쟁을 이어가는 삶의 현장에 대한 은유다. 섬은 고립과 고독의 공간이다. 그러니 섬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도 있을 텐데, 위에 옮겨 쓴 것과 같은 대중의 무관심, 혹은 외면이 그 바다일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되는 섬은 7개. 쌍용자동차, 밀양 송전탑, 재능교육, 콜트ㆍ콜텍, 제주 강정마을, 현대차 비정규직, 코오롱이 섬의 이름이다. 14명의 만화쟁이와 글쟁이가 2명씩 짝을 이뤄 그 섬의 쓸쓸함을, 바다의 차가움을 그리고 썼다. 만화의 접근성과 르포르타주의 기록성을 함께 갖췄다. 연대의식. 이 독특한 기획의 목적은 그것이다.
박노해 시 ‘이 땅에 살기 위하여’에 등장하는 1980년대의 절망을 표현하는 장기농성 기간은 “삼백일”이다. 민주와 반민주로 갈려져 싸울 당시, 노동운동의 현장에선 30일만 넘어도 장기투쟁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오늘날 투쟁의 현장에서 1년은 짧은 축에 속한다. 현재 복직 투쟁 중인 코오롱 구미공장 노동자들이 해고 통보를 받은 건 2005년 2월이다. 문전옥답에 765㎸짜리 송전탑이 들어서는 걸 막기 위해 밀양 주민들이 싸움을 시작한 것이 그 해 여름, 노동을 하면서도 노동자로 인정 받지 못하는 재능교육 교사들이 천막농성을 시작한 것은 2007년 5월이다.
그런데 이 긴 투쟁의 요구는, 어처구니없게도 너무나 당연한 것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현대차 비정규직이 요구하는 것은 노동부의 지시를 이행하라는 것이고, 재능교육 문제는 사측이 노조와 지킨 단체협약을 지키지 않은 것에서 비롯됐다. 지난 2월 서울고등법원은 쌍용차의 정리해고가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그래서 이 섬들에선 투쟁을 일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당연한 것을 위해 모든 것을 걸어야 현실. 하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외로운 메아리로 맴돌고 있다.
‘섬섬 프로젝트’로 명명된 이 책의 작업이 시작된 건 지난해 봄. 인터뷰를 바탕으로 한 공동 기획인데도 작가의 개성이 드러난다. 책을 읽을 때 재미를 기대해도 된다는 뜻이다. 유쾌함과 진지함이 매끄럽게 어울려 있는 건 책을 만든 사람들의 공력이라 해야 옳을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 말고도 긴 시간 외롭게 싸우고 있는 이웃들이 많기에, 섬섬 프로젝트는 계속될 것이다. 저자들은 그렇게 밝히고 있다.

유상호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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