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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한 언어 속 풍기는 지난한 삶의 땀과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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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랄한 언어 속 풍기는 지난한 삶의 땀과 눈물

입력
2014.05.30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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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시집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를 낸 안현미 시인. 그는 '시인의 말'에 "어떤 슬픔은 새벽에 출항하고 어떤 아픔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다. 오늘 우리는 겨우 살아 있다. 어쩌면 저주가 가장 쉬운 용서인지도 모르겠다"고 썼다. 창비 제공
세 번째 시집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를 낸 안현미 시인. 그는 '시인의 말'에 "어떤 슬픔은 새벽에 출항하고 어떤 아픔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한다. 오늘 우리는 겨우 살아 있다. 어쩌면 저주가 가장 쉬운 용서인지도 모르겠다"고 썼다. 창비 제공

안현미(42) 시인의 세 번째 시집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연암은 열하를 일러 ‘사나이가 울 만한 곳’이라 했다는데 / 당신은 바다를 일러 ‘사랑이 울 만한 곳’이라 한다.”(‘사랑’) 이 구절을 빌어 일컫자면, 우리는 이 시집을 ‘독자가 울 만한 곳’이라 명명할 수 있겠다. “물고기가 키스하는 이 명랑, 이 발랄!” 앞에서 “공연히 무작정의 눈물이 왔다”는 시인처럼, 이 ‘무작정의 눈물’은 시를 읽는 우리마저 때때로 습격한다. “진솔함의 미덕과 상상력의 힘을 합체하는 타고난 언어감각”이란 평가를 받으며 신동엽문학상을 수상한 <이별의 재구성> 이후 5년 만에 낸 시집이다.

이 무작정의 눈물에는 물론 까닭이 있을 것이다. 시집을 읽고 나면 자연스럽게 추출되는 삶의 연대기가 아리도록 슬픈데, 그 신산한 슬픔이 종종 개나리처럼 명랑해서일 수도 있다. 명랑한 슬픔은 명경처럼 맑아서 저마다의 고통을 되비추고, 발랄한 언어 조탁 속에 강하게 풍기는 삶의 체취엔 우리의 땀과 눈물의 냄새를 닮은 것이 있다.

“내 아버지는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주항항 광부였고, 내 어머니는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밥해주는 아줌마였지만, 그들의 삶은 한번도 대한석탄공사 연탄처럼 활활 타오른 적도 없는 / 막장 같은 나라”(‘흑국보고기’)에서 태어난 것은 비단 시인뿐만이 아니다. 스물두 살에 머리 깎고 여승이 되려 떠났던 시인은 결국 돌아왔고 “돌아와 한동안 무참함을 앓았다.” “감히 요절을 생각했”지만(‘어떤 삶의 가능성’) “너무 서둘러 시집왔나 생각”하며 “어린 엄마”가 되었고, “무구하게 당도”한 “누군가의 기원이 되었다.”(‘내간체’)

“출근과 퇴근의 미로”에 갇혀 “09시부터 18시까지 매일매일 서류를 작성하”며(‘꿈의 환전소’)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서 있어야 할 자리라고 매일 아침 자신을 속이는 어떤 허무처럼 일인용이고 일회용인 한 개도 재미없는 삶”(‘그도 그렇겠다’)을 살아가는, “일년 내내 일요일을 환전해주”는 ‘꿈의 환전소’를 꿈꾸는 이는 누구인가. 마흔 이전이든, 이후든, 우리는 대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삶을 인용해서 살고 있는 것만 같은 / 불혹, 블랙홀”(‘불혹, 블랙홀’)들이다. 안현미의 시 속에서 ‘우리’는 그렇게 ‘나’로 수렴된다.

“명명백백하게 ‘비정규 세대’라고 명명당한 우리 세대 / 우리는 우리의 입장을 세울 틈도 없이 / 주저 없이 초 단위로 할인되고 / 우리는 우리 세대에 장기출석하지 못하고 있는 주인공인데. 누가 누구의 시간을 할인하고 쎄일하는가. 누가 누구의 삶을 분리하고 분배하는가 / 피도 눈물도 없이 / 총도 핵도 없이.” (‘정치적인 시’)

많은 사랑이 있으므로 많은 이별 또한 이 시집에는 있다. 특히 “남의 둥지에서 태어난 어린 뻐꾸기의 울음을 빌려” 엄마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편이 여럿 실렸다. “동냥젖을 먹고 자란” 태백 출신의 시인이 “우리 엄마”라고 부르는 이는 “택배처럼 배달”된, “태백처럼 외로운” ‘엄마2호’. “국립의료원 중환자실 / 신원미상 행려병자 ‘불상님’들과 / 나란히 누워있는 우리 엄마 / 태백처럼 큰 슬픔 / 지금, 여기, 이곳이 네 집이지 / 늘 그러던 우리 엄마 / 불현듯 갑자기 훅 이 생을 건너감 / 다음 생 같은 건 약속할 틈도 없이. 나의 두 번째 엄마 / 사랑해, 라는 말은 / 너무 작아서 쓰지 못함.”(‘엄마2호’)

어떤 사랑이든, 결말이 산뜻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어떤 ‘사랑해’에서는 이별의 기척이 먼저 들린다.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울리는 알람이 있다고 믿는다 했다 꼭 사랑이 아니라도 울리는 알람이 있다는 말은 생략, 그건 좀 슬픈 이야기니까…사랑해, 라는 말의 가장자리에서 우리는 촛농처럼 흘러내리고 있다.”(‘축 생일’) 하지만 “사랑의 부재 또한 사랑 아니겠는가.”(‘그도 그렇겠다’) 시인에 따르면, 사랑은 “세계가 확장되는 시간”(‘사랑’)이며 “우리 모두 미래의 누군가에겐 위로가 될지도 모르는 존재들”(‘이별수리센터’)이다. 부재와 존재, 종료와 시작을 반복하며 사랑은 언제나 진행형으로 면면하다. 잠시 고장날 수는 있지만 영원히 망가질 수는 없다. “끝내기 위해서는 시작해야만 한다. 끝날 줄 알면서도 시작해야만 한다. 그리하여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이별수리센터’)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안현미 지음, 창비 발행ㆍ104쪽ㆍ8,000원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안현미 지음, 창비 발행ㆍ104쪽ㆍ8,000원

박선영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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